[국민 정체성 조사] 교수 아버지, 공무원 딸 '사회 가치관' 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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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서울 이화여대 사회대 학장실. 부녀는 "얼굴을 맞대고 얘기하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최근 몇 년간 딸이 사법연수원 생활에 이어 외무공무원에 임용되면서 대화 시간이 적어졌다고 한다. 교수와 공무원, 50대와 20대. 한국종합사회조사에서 드러난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치관을 놓고 아버지와 딸은 오랜만에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아버지가 먼저 국가관.공직관으로 말을 던졌다. "학생들과 얘기해 보면 국가.민족 개념이 약한 것 같아. 봉사에 관심도 적고…. "

아버지는 "한국 것이라고 하면 대놓고 폄하하면서 외국 것이라 하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는 풍조는 문제"라고 말했다. 교육 시스템이나 경제 수준이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할 정도가 됐는 데도 꼭 유학을 가야 성공한다고 생각하고 외국계 회사가 한국 회사보다 낫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딸은 동의하면서도 그 책임을 기성세대에 묻는다.

"가난을 딛고 풍요를 이룬 부모 세대가 '너는 이제 좋은 대학 가서 돈 많이 벌고 잘 살아라'는 식으로 자녀에게 개인주의를 부추기는 교육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지. 그런데 말이야, 너도 공직자이지 않니. 개인주의가 공직사회를 멍들게 하지. 공직자들은 국민.나라에 대한 봉사를 최우선으로 놔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시민이 공공기관을 불신하는 이유도 공익보다 사익을 앞세우는 공직자의 모습을 자주 봐왔기 때문이지. "

하지만 공직사회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이 실제보다 지나치게 부정적이라고 딸은 반박했다.

"공무원이 일을 잘하고 있으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잖아요. 안 좋은 사건이 터지면 언론이나 사람들이 그제야 돌아보죠. 그래서 '정부'하면 안 좋은 생각만 하는 것 같아요. 조사 결과 학계가 가장 높은 신뢰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왔는데, 대학은 일반 사회와 접촉이 없는 편이잖아요. 그래서 국민이 딱히 신뢰를 잃을 만한 계기가 없는 것 아닐까요. "

딸은 "젊은 세대는 '자기 의견이 있으면 표현하라'고 교육받았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아버지는 "한국전쟁이나 독재시대를 경험한 기성세대들은 '나서면 다친다'는 생각에 자기 의견을 대놓고 주장하는 걸 주저한다"고 스스로를 돌아봤다. 그러면서도 아버지는 "젊은 세대가 사회 이슈에 대해 사사건건 편가르기 식으로 행동하는 경향은 사회 발전에 오히려 해롭다"고 지적했다.

◆부녀 약력

안홍식(55)
1970~74년 서울대 경제학과
83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경제학 박사,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2004년~ 이화여대 사회대 학장

안현주(27)
97~2002년 이화여대 법학과
2002년 사법시험 합격
2005년 2월 외교통상부 사무관 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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