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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새역모' 교과서 문제점] 中. 한·일 식민지 근대화론의 차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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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 신주백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책임연구원

문제가 된 후소샤(扶桑社)의 개정판 역사교과서 검정신청본은 2001년 나온 현행판과 비교할 때 '조선의 근대화'를 유달리 강조하고 있다. 크게 보면 두 군데다.

하나는 개항 이후 "조선의 근대화를 돕기 위해 군대의 제도개혁을 원조하였다"(164쪽)는 대목. 이 내용의 앞뒤에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관한 설명을 붙여 일본의 한반도 침략이 방위 차원에서 불가피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한국 병합'이후 조선을 개발했다는 대목. 조선총독부가 "철도.관개 시설을 정비하는 등 개발을 하고, 토지조사를 개시하며 근대화에 노력했다"(170~171쪽)는 것이다. 이 대목에는 '대만의 개발에 힘을 기울인 하타 요이치'라는 칼럼을 이번에 함께 새로 넣어 식민지 개발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반면에 조선총독부가 3.1운동 이후 무력으로 억누르던 지배방식을 바꾸었다고만 서술하고 있지 한국인의 저항에 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후소샤의 검정신청본은 조선에서의 근대화를 부각하면서 한국인이 당한 정치적 억압과 고통을 무시하고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왜곡하려 하고 있다. 그래서 이것은 식민지 근대화론이라기보다 '식민지 미화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역사를 총체적으로 보지 않고 특정 부분, 특히 경제적 측면에 주목해 일제 강점기를 보려는 태도는 한국의 '식민지 근대화론'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한국의 '식민지 근대화론'에도 여러 주장이 있어 하나로 뭉뚱그려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이 주장은 1960년대 고도성장의 역사적 배경으로 식민지 시기를 주목한다. 그리고 경제 통계를 가지고 설명한다. 후소샤의 검정신청본도 세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오늘의 일본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자기 나라에 대해 자긍심을 갖고 있는 일본인을 양성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만들었다. 이들의 '식민지 미화론'은 단지 조선을 지배한 사실을 숨기려는 생각에서만 제기한 주장이 아닌 것이다.

두 주장에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식민지 미화론'은 '평화헌법'을 중심으로 발전해 온 전후(戰後) 민주주의를 철저히 부정하고 있다. 한국의 일부 '식민지 근대화론' 역시 4.19 혁명에서부터 6.10 민주화운동까지의 민주화 과정과 인권의식의 발전에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 학계의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적 민족주의를 긍정하지 않는다. 이 점이 '식민지 미화론'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최근 일본의 지배가 '불행 중 다행'이며 우리에게 '축복'이었다는 어떤 지식인의 발언과도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입장은 한국과 일본의 오늘을 이해하는 접근법에서 일치하기 때문에 현재의 정치와 과거 인식에서 근접할 수 있는 여지가 아주 많다.

아무리 일제 강점기라 해도 사람이 사는 곳이었기에 일상은 있었다. 일상은 그 시기의 삶을 총체적으로 반영한다. 따라서 일제 강점기는 한국인의 삶을 정치나 경제, 개발과 수탈(침략) 내지는 근대적 체험 가운데 어느 한 요소만으로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요소를 규정하는 기본은 일본 제국주의가 지배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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