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원자로 '퇴역' 발등의 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 고리원전 1호기 전경. 윗부분의 둥그런건물 안에 원자로가 들어 있다.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의 역사가 30년에 가까워지면서 수명을 다한 원자로들이 하나 둘 나타나고 있다. 1978년 건설돼 다음달이면 27번째 생일을 맞게 되는 '대한민국 1호 원자로'인 고리 1호기의 예상 수명은 30년. 법적으로 정한 것은 아니지만 제조사인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권장한 '설계 수명'으로 앞으로 불과 3년 남았다. 오는 6월 가동을 앞둔 울진 6호기를 포함, 지금까지 지어진 원자로는 총 20개. 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월성 1호기, 그리고 고리 2호기.고리 3호기 등이 차례로 수명 만료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우리나라엔 수명이 끝난 원자로에 대한 규정이 전혀 없는 상태다. 이제서야 정부는 관련법 개정을 서두르고 있다. 과학기술부 관계자는 13일 "원자로의 노후화 정도를 바탕으로 5개 부문 58개 항의 안전성 평가기준을 만드는 내용으로 법안 초안을 마련했다"며 "연내 원자력법 시행령을 개정, 이 평가기준에 따라 수명을 다한 원자로의 연장가동.영구정지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너무 늦은 대책"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서울대 강창순(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정부가 방폐장 문제 등 때문에 너무 눈치만 보며 원자로 수명 문제를 계속 미뤄 결국 이 시점까지 오게 됐다"며 "시간에 쫓겨 주먹구구로 기준을 만든다면 더 큰 문제를 빚을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해 10월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홍창선(열린우리당) 의원도 "모든 나라가 주기적인 안전평가를 통해 연장가동 여부를 결정하는데 우리는 그런 시스템이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편 환경단체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설계수명은 안전성 등을 고려해 정한 것이므로 수명 다한 원자로를 폐기하지 않고 연장 가동한다면 사고 위험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필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