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2)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2)

일러스트 ⓒ 김영진, 0jean76@hanmail.net

프롤로그 2

말발굽은 원래 말의 발톱이다.
엄지발가락은 퇴화해 없어지고 네 개의 발가락이 서로 들러붙어 무기물처럼 진화한 것을 가리켜 말발굽이라 부른다. 신경세포도 없고 핏줄도 없기 때문에 쇠줄로 갈아내도 아픔을 느끼진 않는다. 손상되기 쉽고 빙판길에선 미끄러져 잘 걸을 수 없는 것이 약점이다. 내가 나의 손바닥에서, 강력한 말굽을 똑똑히 느끼고 인식한 것은 아마 사천에서 남해로 가는 밤길이었을 것이다. 폭풍이 오고 있던 것으로 기억된다. 노숙하기에는 너무 추워서 어느 어물창고로 다가갔다가 주먹만 한 녹슨 자물통을 보고 불끈 울화가 치밀어 오른 게 사달의 시작이다. 나는 이미 사흘이나 노숙을 했고 종일 굶주린 터라 폭풍의 전조가 깊은 늦가을 밤, 더 이상 길에서 잘 기력이 없었던 모양이다. 멍청해 뵈는 자물통 때문에 불같이 화가 났고, 그래서 발작하듯 손바닥으로 탁 자물쇠를 내려쳤는데, 자물통의 걸림쇠가 단번에 빠졌던 것이다. 아니 빠졌다기보다 자물통이 부서져버렸던 것 같다.

반사적으로 손바닥을 들여다보았는데, 놀랍기도 하지, 마을의 외등 불빛을 사선으로 받은 손바닥에서 분명히 시커먼 쇠말굽이 솟아나 있다가 쓰윽 꺼져 들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말굽은 엄지손가락 상단 안쪽에서 시작, 검지손가락 상단에서 끝난다. 그러니까 엄지와 검지 사이로 열린 채 손바닥 가장자리의 굳은살 속에 U자 형의 말굽이 은신해 있는 셈이다. 자물통을 부술 때의 말굽은 표면을 뚫고 강력하게 솟구쳐 올라온다. 정확하게 본 적은 아직 없다. 들여다보려 하면 어느새 피부 속으로 쓱 꺼져 들어가기 때문이다.

피시방에서 ‘말굽’을 검색해본 일이 있다.
조선의 성종(成宗) 때의 일이다. 윤필상(尹弼商)이라는 문관이 여진족 정벌에 나섰다가 언 땅이라 미끄러워 말이 제대로 걷지를 못하자 둥글고 갈라진 쇳조각을 말발굽에 박았던 것이 우리나라 말굽의 효시였다는 기록을 본다. 서양에선 말굽을 행운의 상징으로 여겨 기념품 가게에서 인기리에 판매된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그러나 더 흥미로운 것은 말굽에 대한 동양의 일부 비판적인 견해들이다. 예컨대 장자(壯者)는 쇠말굽은 편리하나 자연현상을 거슬러 혹사시키므로 말이 빨리 노쇠하게 한다 했고, 실학자 이익(李瀷)이라는 이도 ‘말에게 물어본다면 말굽만큼 해로운 것이 없다고 대답할 것’이라 지적하고 있다.

내 손바닥의 말굽이 나를 해롭게 하는 일은 별로 없다.
말굽이 단단해지는 속도로 지문이 없어지는 건 뭐 괜찮다. 일찍이 내 손금이 귀인(貴人)의 그것이라고 들었던바, 어차피 맞지도 않는 손금이다. 아쉽다면 이제 나무 기둥이든 벽돌 담장이든 아무 곳이나 함부로 치는 게 좀 조심스러워졌다는 사실뿐이다. 재미있는 놀이 하나를 잃은 느낌이 가끔 든다. 그렇다고 무엇인가를 손바닥으로 칠 때마다 손금 밑에 숨어 있는 말굽이 솟아나와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은 아니다. 나의 말굽에게도 제 자존감에 합당한 어떤 원칙 같은 게 있는 눈치다. 그리고 또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은 최초로 쇠말굽을 고안했다는 윤필상이 연산군의 생모가 폐비되는 걸 막지 않았다는 이유로 끝내 사약을 받고 죽었다는 기록이다. 언젠가 나도 말굽 때문에 죽게 되지는 않을까 싶어 기분이 더럽다.

그렇다. 이것은 결국 살인의 기록이라고 말해질 것이다.
살인자에겐 솔직히 유쾌하지 않은 예감이다. 아니 억울할 수도 있다. 하루도 몇 번씩 알게 모르게 살인을 꿈꾸면서도, 사람들은 타인의 살인만은 특별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인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 길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렇다고 내가 살인자에게 인간적 연민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그냥 통한다고 여길 뿐이다. 셰익스피어가 살인자를 많이 창조한 것은 그 자신이 살인자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책이었다고 지적한 글을 본 적이 있다. 놀라운 통찰력이지 않은가. 수많은 누군가의 돌팔매질을 받더라도 살인이야말로 때로 최고의 윤리성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윤리성의 마지노선일 수 있다고. 무엇을 살인도구로 사용했다 하더라도 죽이는 것은 손이며 손은 마음에 따른다. 마음은 윤리성이 최후에 들어가 누울 어둡고 깊고 향기로운 아기집이지 않은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