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새역모' 교과서 문제점-역사학자 릴레이 기고] 상. 황국사관 부활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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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역사 교과서 파문이 2001년에 이어 다시 되풀이되고 있다. 일본 우익세력은 주변국의 반발을 뻔히 예상하면서도 왜 같은 일을 반복할까. 문제의 핵심인 '새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의 역사인식을 들여다 보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새역모 교과서 검정 신청본을 분석한 '아시아 평화와 역사교육 연대'소속 역사학자 세 명의 분석을 차례로 소개한다.편집자

일본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새역모)'이 검정용으로 제출한 교과서는 2001년 검정을 통과한 현행판의 기본 관점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내용을 교묘하게 더 왜곡했다.

이 교과서는 일본 우익의 역사관을 바탕으로 서술됐다. 새역모는 현재 일본의 주류 역사관을 자학사관(自虐史觀)으로 규정하고, 자유주의사관에 입각해 새로운 교과서를 서술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들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열린 도쿄 전범재판이 일본인의 자존심과 자신감을 빼앗았고, 스스로를 범죄인으로 여기며 살아가게 했다고 주장한다. '스스로를 학대하며' 노력한 결과, 이제 선진국들을 따라잡았다고 판단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따라갈 나라가 없어져 방향성을 상실하게 됐다는 것이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일본과 일본 학생들에게 방향을 제시해 주기 위해 교과서를 집필했다는 얘기다.

▶ 13일 여의도 국회도서관을 찾은 시민들이 "일본의 역사 왜곡을 말한다"전시회를 관람하고 있다.김형수 기자

역사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연구하고 가르친다. 그런 면에서 일본이 자신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방향이 새역모의 역사교과서여서는 안 된다.

역사는 과거의 사건을 소재로 현재를 탐구하고 미래의 방향을 모색하는 학문이다. 기본적이고 보편적 권리인 자유와 인권, 사회적 평등, 국제적 평화를 증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새역모의 역사관은 정반대다. 한마디로 '황국사관(皇國史觀)의 부활'이다. 황국사관은 가족이라는 혈연 관계를 국가로 확대하며, 그 중심에 천황을 놓는 역사관이다.

개정판 신청본의 마지막에 쇼와(昭和) 천황의 칼럼을 실은 것은 특히 주목할 대목. "패전 후 천황은 일본 각지를 순행하시며 부흥에 힘쓰는 사람들과 친히 말씀을 나누고 격려하셨다. 격동하는 쇼와 시대를 일관해서 국민과 함께 걸으신 생애였다"(225쪽)고 했다. 사실상 전범인 천황을 찬미하는 이 칼럼은 현행판엔 중간에 실려 있으나 개정판 신청본엔 대미를 장식하게끔 편집해 극적인 효과를 노리고 있다. 혈연 관계의 가족을 국가로 확대하는 모습으로, 현행판엔 없는 문구인 "일본사는 여러분과 피가 이어지는 조상의 역사"(6쪽 서문)를 새로 넣었다.

▶ 안병우 한신대 교수.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 공동운영위원장

황국사관은 이웃 국가에 대해서는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합리화했기 때문에 '식민사관'으로 불리며, 중심 내용은 타율성과 정체성이다. 고조선을 부정하고 한국사의 시작을 낙랑군으로 잡으며, 임나를 강조하는 서술이 바로 한국 역사가 중국과 일본의 영향과 지배 아래서 시작됐다고 하는 타율성의 표현이다. 식민지 지배가 근대화를 도왔다는 서술은 바로 조선은 자생적으로 근대화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일본이 희생을 무릅쓰고 병합했다는 정체성 논리의 재판이다.

황국사관은 일본의 아시아 침략과 지배 논리를 제공했다. 황국사관이 또 등장한 것은 일본이 다시 침략국으로 돌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그러한 교과서가 사용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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