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투기 부추긴 정책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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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떠나야 할 땅에 외지인들이 왜 집들을 저렇게 짓는지…."

행정도시 중심이 될 충남 연기군 남면의 한 노인은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노인은 "대부분 사람이 살지 못할 정도의 날림집들인데 누가 봐도 보상을 노리고 하는 것이 뻔하지 않으냐"고 말했다.

본지 확인 결과 지난해 10월 21일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 결정이 난 뒤부터 지난 2일 행정도시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될 때까지 4개월여 동안 이 지역에 18건의 형질 변경(개발행위)이 있었다. 연기.공주 일대의 건축허가 및 개발행위 제한이 풀리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같은 기간 건축허가(신고)도 82건이 났다.

연기군 관계자는 "실제로는 더 많은 집이 지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지에 60평 이하 주택을 지을 경우 건축허가가 필요 없고, 아무 때나 짓고 나서 건축물대장에 올리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자치단체나 행정도시 예정지에 대한 보상업무를 맡을 토지공사는 속수무책이다.

군 도시개발 담당자는 "빨리 건설교통부 고시가 나와야 개발행위를 제한할 수 있다"며 답답하다는 표정이다.

그는 "개발행위 제한은 오는 18일 특별법 공포 후에나 가능하다. 이 때문에 보상을 노린 것인 줄 알면서도 하는 수 없이 형질 변경 신청을 받고 있다"고 털어놨다.

토지공사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번 주부터 토지 보상을 위한 기초 조사에 들어가며 보상의 기초 자료가 될 항공사진 촬영 용역도 며칠 전에야 발주했다.

이주자 택지(일명 딱지)보상 대상도 헷갈린다. 지난 신행정수도특별법 때는 예정지 고시일로부터 최소 1년 전에 살던 사람으로 제한한다고 발표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직 정해진 게 없다.

모두 '신행정수도'건설이 엎치락뒤치락하는 통에 벌어진 일이다. 이런 정부 정책의 혼란을 틈 타 투기꾼이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다. 투기꾼을 차단할 수 있는 정부의 발 빠른 대책이 시급한 시점이다.

조한필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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