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은행 수수료 묘수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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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수수료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은행 영업시간 이후나 휴일에 현금인출기(ATM)에서 돈을 인출하면 계좌가 개설된 은행에서도 수수료를 600원이나 물리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에서 발행한 수표에 대해서도 추심 수수료를 최고 7000원까지 받는다.

이에 따라 금융감독원은 최근 영업 마감 이후 수수료 부과 시점을 현행 오후 5시에서 6시로 한 시간 늦추고 다른 지역 수표에 대한 추심 수수료도 받지 말라고 요구했다. 수수료 수익이 은행의 총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 3년간 꾸준히 늘었다는 게 금감원의 설명이다.

은행의 수익원은 크게 나눠 두 가지. 하나는 예금과 대출 금리의 차이에서 오는 수익이고 나머지 하나는 각종 수수료 수입이다. 은행들은 금융 자유화에 따라 1995년 고객 서비스 수수료를 도입했다. 정부는 수수료 수입의 증대를 독려해 왔지만 국내 은행의 총이익 중 수수료 수익 비중은 지난해 11.3%로 미국(27.7%)이나 일본(14.8%)보다 여전히 낮다.

그러나 최근 수수료가 너무 높다는 여론이 다시 일자 금감원은 수수료를 폐지하거나 내리라고 은행에 요구했다. 이에 대해 시중은행 관계자는 "현행 수수료로는 원가를 건지기도 쉽지 않다. 금감원 요구를 수용해야 할지 정말 고민"이라고 말했다.

은행들은 자동화기기를 많이 늘리는 바람에 관리비용 부담이 큰 게 사실이다. 이용자가 많지 않은 군부대나 국립공원에도 현금인출기를 설치하고 한밤중이나 휴일에도 현금이 아쉬운 고객에게 서비스를 확대한 결과다.

다만 은행들도 필요하다면 각종 수수료를 합리적으로 산출해 소비자의 불만을 줄여야 한다. 소비자들 또한 '서비스는 공짜'라는 생각을 버릴 때가 됐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금감원의 일방적 지시는 모양새가 좋지 않다. 자칫 금융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수수료를 조정하도록 유도하는 게 고객 서비스를 개선하고 튼튼한 은행을 만드는 지름길이 아닐까.

김동호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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