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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벽, 이들에겐 없다 … 바이올린 여성 쾌속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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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 장면 1=2009년 5월 벨기에 브뤼셀. 퀸엘리자베스 콩쿠르는 해마다 종목을 바꿔가며 열린다. 지난해엔 바이올린이었다. 지난 60여 년 숱한 스타를 배출한 이 대회에 각국 참가자가 몰렸다. 최종 결선에 12명이 올랐고, 이 중 넷이 한국 연주자였다.

 # 장면 2=2010년 9월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바이올린 대회 중 최대 상금을 자랑하는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 최종 결선 진출자는 여섯 명. 이 중 둘이 한국 연주자였고,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다.

 여기서 퀴즈. 두 장면의 공통점은? ‘음악계의 영 파워’는 90점짜리 답이다. 가장 정확한 표현은 ‘바이올린 여성 쾌속시대’. 세계적 콩쿠르의 높은 벽을 허문 한국 연주자는 모두 여성이었다. 정경화(62), 사라 장(30) 등 ‘바이올린 여왕’ 자리를 물려받을 태세다. 전에도 바이올린에선 여성이 강세였지만 이처럼 젊은 여성 연주자들이 동시에 떠오른 적은 없었다. 각기 뚜렷한 색채에 매력을 갖춘 차세대 바이올리니스트 ‘빅4’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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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의 발견=올해의 선두주자는 단연 강주미(23)다. 국제 콩쿠르 우승 소식을 6, 9월 잇따라 전했다. 그사이 여름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는 현대음악을 연주했다. 힘이 넘쳤고, 음색은 두드러지게 강렬했다. 음악으로 객석을 감전시키는 ‘여전사’ 스타일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오페라 음악을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사람의 목소리와 삶의 이야기를 악기에 싣겠다는 각오다. 1980년대 독일 무대에 진출했던 성악가 강병운, 활발히 활동했던 소프라노 한민희씨의 딸답다.

 ◆주머니 속의 송곳=8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7인의 음악인들’ 공연이 열렸다. 피아니스트 정명훈, 첼리스트 양성원 등 쟁쟁한 음악가들 사이에서 김수연(23)의 소리가 빛났다. 지나치게 튀어나오지 않는 화음을 연주하면서도 청중을 끌어들였다. 화려하기보다 명상적이지만, 객석을 집중하게 만드는 저력의 연주자다. 독일에서 태어나 자랐는데도 국내에서 출판사 한길사의 김언호 대표가 후원회를 조직했을 정도로 강한 매력을 전염시킨다.

 ◆스타 카리스마=“듣는 이를 세상으로부터 이탈하게 했다.” 2008년 프랑스 롱티보 콩쿠르의 심사위원장인 살바토레 아카르도가 신현수(23)를 표현한 말이다. 이 찬사처럼, 신현수의 무대는 묘하게 비현실적이다. 음악뿐 아니라 매너와 집중력으로 무대를 하나의 ‘세계’로 만드는 능력이 있다. 어려서부터 크고 작은 무대에 자주 서왔던 그는 본능적으로 음악에 반응한다. 각축전을 벌이는 동년배 연주자 중 스타성만큼은 단연 선두다. 15년 스승 김남윤 교수의 평 또한 정확하다. “듣는 이의 귀, 보는 이의 시선을 잡는 신현수 특유의 카리스마가 있다.”

 ◆성숙해진 신동=많은 연주자가 피고 지는 가운데 이유라(25)는 묵묵히 자리를 지켜왔다. 국제적 명성으로 보면 최상위권에 위치한 연주자다. 세계적인 매니지먼트사인 ICM과 계약했고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를 수상하면서 세계 일류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하지만 연주 횟수나 음반 발매에 집착하지 않는다. 대신 비올라 연주자로 앙상블 무대에 서는 등 스스로 생각하는 ‘음악가’의 모습을 완성해가고 있다. 연주 스타일 또한 진중하고 심각하다. 어린 시절 ‘신동’으로 부각됐지만 요즘은 화려함 대신 깊이를 선택한 듯한 행보다.

 이외에도 장유진(20)·최예은(22)·윤소영(26)·신아라(27) 등이 이름을 떨쳐가고 있다. 사실 바이올린은 체력보다 서정성, 힘보다 섬세함이 장점을 가지는 악기. 파워가 요구되는 피아노에 비해 여성 연주자들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음악칼럼니스트인 최은규씨는 “젊은 바이올린 연주자들은 음악적 특징이 고정돼 있지 않아 더욱 놀랍다. 변화와 발전에 가속도가 붙어있다”라고 말했다. ‘여성군단’이 다채롭고 풍성한 바이올린 무대를 보증한다는 뜻이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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