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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 포럼

세금이 쌈짓돈이라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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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오는 6월 준공 예정인 경기도 용인시의 문화복지행정타운은 지하 2층, 지상 16층 규모다. 건축 연면적은 2만4000평으로 서울 정부 중앙청사보다 1000평 더 넓다. 사업비가 무려 1620억원 투입되는 행정타운에는 시청.시의회.보건소.복지센터.문화예술원.체육시설이 들어선다. 경북 포항시는 950억원의 예산으로 지하 3층, 지상 14층, 연면적 1만6500평의 신청사를 짓고 있다. 1500억여원을 들여 1년 전 완공된 광주광역시 신청사는 지하 2층, 지상 18층에 연면적 2만6000여 평이다. 인천광역시, 경기도, 경기도 이천시.성남시.여주군, 전남 화순군 등 수많은 지자체도 시청 또는 시의회 청사 신축을 계획하고 있다.

하나같이 수십억~수백억원이 소요된다. 대부분의 지자체가 자체 세수로는 예산확보가 어렵자 중앙정부나 광역자치단체의 지원 요청과 지방채 발행을 검토하고 있다. 일부 지자체는 대기업에 찬조를 청탁하는 방안을 공표할 정도다. 빚잔치를 벌여서라도 새 청사를 마련하겠다는 속셈이다. 재정악화는 안중에도 없다.

인천시 옹진군의 경우는 더욱 기가 막힌다. 옹진군은 지난해 11월 말 영흥면 선재리 측도(島) 일부에 대한 매각공고를 낸 바 있다. 섬 9만3700평 가운데 군 소유 3만7000여 평을 팔겠다는 것이다. 매매 예정가는 86억7800여만원이다. 바닷모래 채취 금지로 줄어든 세수를 충당하기 위한 조치라고 옹진군 측은 설명한다. 그러나 옹진군은 지하 1층, 지상 7층, 연면적 4450평의 군청사를 건립 중이다. 측도 주민들과 시민단체는 군청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섬을 판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재정자립도가 고작 5% 안팎인 처지에 250여 명의 공무원이 사용할 351억원짜리 건물이라니 정말로 한심스럽다.

자치단체장들이 호화로운 청사 짓기에 열중하는 것은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기념물을 남기겠다는 천박한 공명심 때문이리라. 역대 대통령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공공기관과 건물에 휘호를 남기는 것과 다름없다. 선거기간 중 주민을 위해 뼈가 바스러지도록 봉사하겠다던 다짐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선출됐으니 주민 위에 군림해 세금을 마음대로 쓰겠다는 오만함이 철철 넘쳐흐른다. 한국은 본격적인 저출산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감소하는 주민을 채우기 위한 지자체의 노력은 눈물겹다. 읍.면장이 미역을 사들고 산모를 찾아가고 수백만원의 출산장려금을 주고 위장전입 권장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도 날로 줄기만 하는 판국에 수십 년 뒤에도 대형 청사가 필요할까. 그 돈을 들여 일자리 창출과 주거환경 개선,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 지원과 장학 기금 조성이 바른 선택이다.

더구나 유비쿼터스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서울의 한 지자체는 휴대전화를 이용해 토지대장과 건축물관리대장 등 본인 인증이 필요없는 각종 민원서류를 발급해 주는 유비쿼터스 서비스를 이달 중순부터 실시한다. 민원인은 휴대전화 인터넷으로 서류를 요청하고 편의점에서 팩스로 전송받는다.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인터넷으로 모든 일을 처리할 수 있을 텐데 대규모 오프라인 건물이 꼭 필요한가. 초호화 청사의 꿈에 푹 빠진 자치단체장들은 진지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정약용은 말한다. 고관대작은 지위가 높고 하는 일이 막중한 만큼 훨씬 더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하고 만인의 귀감이 돼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더 못되고 악한 부정으로 세금과 국고를 탕진하고 민원인을 울릴 경우 대도(大盜)라고. 다산의 기준으로 보면 자치단체장들은 '왕도둑'일 것이 분명하다. 세금을 주머닛돈처럼, 쌈짓돈처럼 고대광실 청사 올리는 데 낭비하고 있으니 말이다.

도성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