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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스트 7년 … 제작자 J J의 열정에 난 최선으로 답했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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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한번쯤 이 배우와 마주 앉아 차분히 후일담을 듣고 싶었다. 미국 ABC 방송의 드라마 ‘로스트’와 배우 김윤진(37). 그는 한국 배우 최초로 미국 드라마 주연을 한 배우다. 그가 맡은 배역의 대사 중 절반이 한국어로 나왔다. 미국 TV드라마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로스트’가 어디 예사 드라마이던가. 전미 시청률 1위, 미국 내 시청자만 회당 평균 1200만 명, 세계 210개국 시청. ‘위기의 주부들’ ‘그레이즈 아나토미’와 함께 ABC의 중흥을 이끈 일등공신으로 불리는 화제작이었다.

‘로스트’가 햇수로 7년 만에 시즌6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미국 종영은 4월, 국내 케이블TV 방영도 8월에 끝났지만, 한국과 해외를 오가는 그의 스케줄을 파고들기란 쉽지 않았다. 14일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에서 김윤진을 만났다. 이날도 일주일간의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 심사, 신작 ‘심장이 뛴다’ 촬영 등 새벽까지 이어진 스케줄을 마치고 나서야 짬을 낼 수 있었다. 

글=기선민 기자 murphy@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로스트’는 무인도에 불시착한 항공기 승객 48명의 생존담이다. 김윤진은 남편과 함께 살아남은 한국인 여성 선(Sun)을 연기했다. ‘쉬리’ DVD를 본 ABC 총괄부사장 켈리 리가 김윤진을 캐스팅했고, 제작자이자 크리에이터(각본 총괄) J J 에이브럼스가 김윤진을 위해 한국인 캐릭터를 새로 만든 건 유명한 얘기다. 남편 진을 연기한 한국계 대니얼 대 김은 ‘로스트’의 성공을 발판으로 CBS 수사물 ‘하와이 파이브-오’ 주연으로 발탁됐다.

● ‘로스트’가 끝났습니다. 2004년 당시가 기억나나요.

 “캐릭터가 원래 없다가 저 때문에 갑자기 생긴 거라 비중이 크지 않았어요. 하지만 뭔가 특별한 작품을 만나게 된 것 같다는 느낌은 분명 있었죠. 데뷔작인 ‘쉬리’를 할 때랑 비슷했어요. 이런 영화 지금까지 한국에 없었는데, 대성공이든가 참패든가 둘 중 하나겠다 싶었거든요. ‘로스트’도 ‘이런 스케일의 드라마를 TV에서 볼 수 있다니!’라는 극찬을 듣든가, 아니면 리얼리티쇼 ‘서바이버’ 베꼈다 망한 드라마네’라는 비웃음을 사든가였죠. 안전한 길을 가지 않을 때 느껴지는 위험과 두려움, 거기서 특별한 에너지가 느껴졌던 것 같아요.”

● ‘로스트’를 하기 전과 후, 무엇이 가장 달라졌나요.

 “그 질문은 제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받았을 때 해주시면 안 될까요?(웃음) 미국 드라마 한 편 찍었다고 제 삶이 바뀐 건 없어요. 제 주관이 바뀐 것도 없고요. 7년간 열렬한 연애에 빠졌다 나온 기분이에요. 선(Sun)을 사랑했다가, 미워했다가, 짜증도 냈다가…. 시즌6까지 오다 보니 좀 지겨워지기도 했죠. 만날 섬에 갇혀 있어야 하고, 의상도 똑같고. 20벌을 번갈아 입는데 늘 똑같은 옷이었으니까요.”

●‘로스트’가 워낙 인기를 끌다 보니 허술한 한국 묘사에 대한 비판도 많았는데요(인터뷰 일주일 후인 21일 한나라당 홍정욱 의원은 외교통상통일위 국정감사에서 “개천 수준의 한강에 돛단배가 떠다니는 식으로 한국이 왜곡 묘사됐다”고 지적했다).

 “파일럿(본방영되기 전의 시험용 프로) 찍을 때부터 J J 에이브럼스와 한국 묘사에 대해 여러 번 언쟁을 했어요. ‘로스트’가 210개국에 방영된다고 해서 제가 전 세계 국가 수가 얼마나 되나 찾아본 적도 있어요. 230개국이 좀 넘는데 이 중 210개국이면 올림픽 참가국보다 많은 숫자인 거예요. 대단하죠. 그런데 한국을 한 번도 와보지 않고, 한국인을 한 번도 만나보지 않은 사람들이 진과 선 부부를 보면서 ‘한국인들은 저러나 보지?’ 오해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했어요. J J와 전화통화를 3시간이나 한 적도 있었죠. 제가 30분 얘기했고, J J가 2시간30분간 해명과 설득을 했죠. ‘진과 선 부부 집 식탁에 놓인 밥과 반찬이 한국식이어야지 왜 중국식이냐’부터 한두 가지가 아니었어요. J J는 ‘시즌이 거듭됨에 따라 선의 비중이 점점 커질 거다. 한국 묘사도 점점 나아지도록 애쓰겠다’고 절 설득했어요.”

●점점 나아지던가요.

 “안 그랬다면 제가 화를 냈겠죠. 제작진은 왜곡을 피하기 위해 정말 무한한 노력을 기울였어요. 문제는 한국을 모르기 때문이었어요. 몰라서 그러는 건데 화낼 일은 아니죠. 미국에 얼마나 많은 국적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요. 대신 한국을 알게 해야죠. 좀 더 좋은 영화와 드라마를 만들어서 우리 문화를 알리는 수밖에 없어요. 문화가 주는 힘은 정말 엄청난 거니까요. ‘로스트’ 하면서 그런 책임감을 많이 느꼈어요.”

●J J 에이브럼스 하면 할리우드에서 손꼽히는 거물인데, 어떤 리더던가요.

 “칭찬의 리더십이죠. 등 두드려 주면서 더 잘하도록 만들어요. 그게 계산된 게 아니라 진심이라는 게 보이니 위력이 대단하죠. 저에 대해서도 ‘저 배우는 가만히 앉아있어도 마음을 움직인다’는 칭찬을 한 적이 있어요. 정말 가만히 앉아있는 장면이었는데!(웃음) 촬영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스스로 ‘난 소중하다’고 믿게 만드는 데 천재적인 사람이에요. J J와 있을 때는 ‘로스트’ 주요 캐릭터 13명 모두 ‘내가 주인공’이라는 착각에 빠져요. 2004년 하와이에서 2주 동안 파일럿을 찍을 때도 하루에 여러 차례 저한테 그래요. ‘윤진, 이게 믿어져? 우리가 하와이에서 지금 이걸 찍고 있다니! 정말 감사하고 행복해.’ 제가 돋보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J J의 열정을 되돌려주고 싶어서 최선을 다하게 되더군요. 지금까지 일했던 감독들 중에 그런 종류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어요.”

●결론부터 묻자면 할리우드에서 아시아 배우가 살아남는 비결은 뭔가요.

 “실력이죠. 백인 배우보다, 흑인 배우보다 연기력이 뛰어나면 돼요.”

 지금은 ‘성공기’로 각광받지만, 2004년 트렁크 하나 달랑 들고 혈혈단신 미국으로 떠났을 때만 해도 그의 미래는 불투명했다. 무작정 에이전트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고, 무명배우의 처지가 돼 오디션을 치렀다. 2007년 펴낸 자서전 『세상이 당신의 드라마다』에서 그가 ‘제일 재미있는 한국어 표현’으로 꼽았던 ‘맨 땅에 헤딩하기’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돌이켜보면 한국 소속사를 통해서 캐스팅을 알아볼 수도 있었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싶기도 해요. 뭐가 그리 급했나 싶죠.” 뭐가 그리 급했을까. “제 자신을 흔들어놓고 싶었어요. 안전함에 익숙해져 있었으니까요. 피부관리실 갈 때만 빼고는 늘 소속사 식구들과 움직이다 보니 점점 바보가 돼가는 기분이었어요. 좀 더 배고파지고 좀 더 절실해지고 싶었어요. 사서 고생하고 싶었어요.”

 연기에 대한 갈증은 더했다. “제 이미지에 어울리고 제가 잘하는 연기만 계속 했다면? 별 문제 없었을 거예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수명이 짧아질 테고 무엇보다 스스로 얼마나 지겨웠겠어요. 지금까지 제가 번 돈, 절약해서 쓰면 평생 일 안 해도 돼요. ‘생계형 연기자’가 되지 않을 자유를 얻었다는 사실이 엄청난 힘이 되죠. 그래도 현 상태에 머무르는 건 정말 재미없을 것 같아요. 문화에도 공해가 있는데, 제 작품이 누군가에게 시간낭비가 된다는 건 참기 힘들어요.”

● 그렇다고 누구나 바닥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건 아니죠.

 “누구에게나 힘들어요. 그렇다면 제일 자신감 넘칠 때 도전하자 싶었어요. 미국 활동은 제겐 숙명 같은 거였어요. 제 어린 시절엔 TV에서 동양인 배우를 거의 볼 수가 없었거든요. 리샤오룽(李小龍) 정도? 중학생이 되니 청룽(成龍)이 나왔어요. 청룽 나오는 영화 하면 아무리 극장이 허름해도 꼭 보러 갔어요. 궁리(<5DE9><4FD0>) 영화가 소개됐을 때 얼마나 반갑던지. 멋진 배우들은 백인, 흑인, 아님 히스패닉. 나랑 피부색도, 생김새도 너무 다르니 ‘커서 저렇게 돼야지’라는 공감이 생기질 않았어요. 그게 너무너무 외로웠어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정체성 문제가 항상 있었을 텐데요.

 “미국에선 미국인이 아니었고, 한국에선 한국인이 아니었죠. 이방인 콤플렉스가 있었어요. 자라면서 항상 제 자신이 어딘가 부족하다고 여겼어요. 늘 뭔가 죽으라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죠. 영어도, 연기도 마찬가지였어요. 학교에 가면 엄마가 프로듀서고 아빠가 감독인 애들이 너무 많았어요. 한국에 돌아오니 한국어가 문제였죠. 연필 물고 발음연습부터 했죠. 무슨 한자어는 그리 많은지!(웃음) 영어 발음하면 버터 냄새 난다고 욕먹었어요. 배터리(battery)를 빠떼리, 레퍼드(leopard)를 레오파드 이렇게 일부러 토종으로 발음하려고 신경도 무지 썼어요. 이민갔다고 얘기하지 않고 유학갔다고 하기도 했죠. 정말 서러웠어요. ”

●하지만 미국 진출에 원어민 수준의 영어가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죠.

 “역할에 제한이 있었겠죠. 배우는 삶을 표현해야 하니까요. 생활영어 수준이냐, 아니면 문화를 전달할 수 있는 정도냐의 차이는 어마어마해요. 아시아 배우가 영어를 완벽하게 못 한다면 쉽게 말해 ‘미녀삼총사’ 같은 영화는 못 한다는 거죠.”

●미국에 진출하고 싶은 다른 배우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가끔 배우가 되고 싶다면서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아요. 전 그래요. ‘연기 외에 다른 일 하면서 행복할 수 있으면 그거 하세요’. 고등학교 때 선생님들이 그러셨죠. ‘연기 아니면 죽겠다 싶은 사람은 남고, 아니면 당장 때려치워라.’ 돈을 엄청나게 벌고 싶다거나 예쁜 옷을 입고 싶다거나 화려함에 매혹돼서 배우가 되겠다면 정말 오산이에요.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면, 내 안에 있는 예술을 사랑하고, 내 안의 열정을 즐기겠다는 각오가 서 있는 사람만이 배우가 될 수 있죠.”

●‘로스트’를 했으니, 이제 오디션 볼 때 좀 쉬워지는 건가요.

 “‘할리우드 진출’이라는 말에 걸맞으려면 영화에 출연해야 해요. 드라마는 엄밀히 말해 할리우드는 아니죠. 누구한테 거절당한다는 건 참 힘든 일이에요. 배우는 평생 3000번에서 4000번 거절당한대요. 거절당하는 이유도 원초적이죠. 너무 키가 작다, 말랐다, 뚱뚱하다…. 큰 상처가 돼요. 하지만 아무리 상처받아도 좋은 배역을 만나고 좋은 감독을 만난다면, ‘로스트’처럼 모든 게 맞아떨어진다면 그때의 희열은 무엇과도 바꾸지 못해요. 기꺼이 4000번 더 상처받을 수 있어요.”

●‘그렇게 힘든 직업인데도 배우가 돼서 가장 좋은 점은 뭔가요.

 “사랑받는 거죠. 촬영장에서 제작진에게 사랑받고 상대 배우한테 사랑받고. 무엇보다 관객에게 사랑받는 거죠.”


겸손하다는 김윤진
“영광인줄 알아, 이것들아 …
이런 말 하고 플 때도 있죠”

충무로에서 김윤진은 소탈하고 격의 없는 태도로 손꼽히는 배우다. 이날 만난 김윤진은 그런 중평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무례하다거나 거만했다는 뜻이 아니다. 거침없었고 똑 부러졌다. MC 제안이 많이 들어오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배우가 겸손하다고 (언론에서) 치켜세우는 게 이상하다. 부산영화제 심사위원으로 갔을 때 심사위원장(와다 에미, 일본 의상감독)이 앉으려고 하기에 의자를 빼줬다. 곧바로 ‘김윤진은 역시 겸손하다’는 기사가 나오더라. 위원장이 77세인데 그게 예의 아닌가? (겸손을 신경쓰다 보니) 어떨 땐 ‘이건 너무 가식적인데’ 싶을 때도 있다. 나도 겸손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영광인 줄 알아, 이것들아!’라는 유행어가 나왔을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웃음)”

 화제는 “배우는 공인이 아니다”로 이어졌다. 김윤진은 3년 전 자서전에서 최고의 배우에게 요구되는 덕목으로 ‘노력-재능-성실성-집중력-침착성’을 꼽았다. 지금의 그는 ‘광기’를 추가하고 싶다고 했다. “배우는 연기력으로 평가받으면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배우에게 사생활도 깔끔하라고 요구한다. 스님처럼 살면서 살인자 연기를 실감나게 하라는 얘기다. 한국에선 숀 펜 같은 배우가 존재하기 힘들다. 나도 좀 더 자유롭게 살면 좀 더 좋은 배우가 될 것 같은데….” .

※김윤진 인터뷰 동영상은 JoinsMSN TV와 아이패드 중앙일보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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