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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뺨치는 일진회] 영화 속 '일진' 변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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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주인공 엄석대는 주먹 하나로 급우들을 휘어잡는 인물이다. 그는 각 과목 1등을 모아 대신 시험을 치르게 하고, 동급생들에게 물까지 떠다바치도록 하는 공포스러운 존재였지만 '조직'을 이끌거나 떼로 몰려다니지는 않았다. 그저 학교에서 행패를 부리는 1960년대식 '일진'이었다.

70년대 말을 배경으로 한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 등장하는 우식(이정진 분)은 카리스마 넘치는 학교 '짱'(싸움을 가장 잘하는 학생)이다. 그는 걸핏하면 싸움을 벌였지만 약자를 보호할 줄도 아는 의리파였다.

조직폭력배 뺨칠 만큼 흉포한 일진의 모습은 80년대의 고등학교 풍경을 보여준 영화 '친구'에 나타난다. 주인공 준석(유오성 분)과 동수(장동건 분)는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며 학교를 장악한다. 그들은 성인 폭력배들의 세력싸움에도 끼어들다 고교를 졸업한 뒤에는 폭력배가 된다.

최근 영화에는 21세기형 '명품 일진'이 등장한다. 지난해 개봉한 '늑대의 유혹'의 주인공 태성(강동원 분)과 해원(조한선 분)은 주먹도 세고 잘 생긴 데다 부잣집 아들이다. 이들은 고등학생이지만 고급 외제차와 오토바이를 몰고 걸핏하면 여자친구에게 휴대전화를 선물한다. 완력에다 외모.경제력.감성까지 갖춘 10대들의 우상을 만들어낸 셈이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상담원 강주현씨는 "영화 속의 주인공에 대한 환상으로 학생들이 일진회에 유혹을 느끼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학교폭력을 주제로 한 영화나 드라마들이 학생들의 일탈을 부추기고 있다"고 진단했다. 2001년 평소 자신을 괴롭혀온 친구를 수업 중에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고교 1년생 김모 군은 경찰에서 "영화 '친구'를 40번이나 보면서 용기를 키웠다"고 진술했다.

홍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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