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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코지의 뚝심 … 350만 명 노조시위 뚫고 연금개혁법 통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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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니콜라 사르코지(55·사진) 프랑스 대통령이 노조와의 ‘개혁 싸움’에서 또 한 번의 승리를 거둘 조짐이다. 연금개혁을 놓고 정부와 노조가 벌인 힘겨루기의 판세가 정부 쪽으로 크게 기운 것이다. 한때 350만 명까지 불어난 파업·시위 참가자 수는 대폭 줄어들었으며, 관련 법안은 의회를 통과해 발효를 앞두고 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07년 공기업 직원들의 연금 납입 기간을 2년 반 연장하는 개혁을 추진했다. 이로 인해 한 달 가까이 지속된 시위를 겪었으나 그는 끝내 정책을 관철시켰다. 프랑스 정부는 1995년과 2006년에도 연금개혁을 시도했지만 당시에는 파업과 시위에 굴복해 주요 개혁안을 철회해야 했다.

 프랑스 일간지 르피가로는 28일 “연금개혁에 대한 충돌이 끝에 다다랐다”고 보도했다. 정부의 승리로 막을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신문은 엘리제궁(대통령 집무실)이 “아직 승리를 선언하기에는 이르다”며 느긋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아홉 번째로 진행된 전국적 시위는 김이 많이 빠진 상태였다. 파업으로 항공 편이 약 30% 결항되고 철도 운행에도 차질이 빚어졌지만 시위대 규모는 작아졌다. 파업과 공장 봉쇄로 연료 부족 사태를 야기했던 정유공장도 속속 정상화되고 있다. 이날 12개의 정유공장 중 절반인 6개가 가동됐다. 파업이 진정 양상으로 접어든 데는 전날 의회가 연금개혁법안을 최종적으로 승인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국사원(콩세이데타·헌법재판소 겸 정부 최고 자문기관)의 위헌 심의만 거치면 대통령이 법안을 발효할 수 있게 됨으로써 노조의 반대가 사실상 무의미해진 것이다.

 국민 여론이 돌아선 것도 한몫했다. 최근 르피가로의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6%가 파업에 반대했다. 한 달 전보다 약 20%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프랑스 언론들은 고교생까지 가세한 시위대가 기물 파손과 방화로 과격함을 드러내 일반 시민들의 지지가 줄었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프랑스에서 둘째로 큰 노동단체인 민주노동동맹(CFDT)이 파업 대오에서 이탈했다. 2013년 봄에 연금제도를 재검토하자고 제안한 정부에 대화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파업과 시위에 맞서 “개혁 후퇴는 없다”며 강경한 자세를 유지했다. 파업 정유공장에는 테러 진압 경찰을 투입해 봉쇄를 뚫었다.

일간지 르몽드는 24일자 사설에서 “대통령이 보수세력에 권위와 결의를 과시하는 대담한 도박을 벌이고 있다”고 논평했다. 우파세력의 지지 이탈을 막기 위해 사르코지 대통령이 노조와 타협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는 3년 전 취임 연설에서 “위험을 안고 과감히 행동해 프랑스의 무기력증을 치유하겠다”고 선언했다.

파리=이상언 특파원

◆프랑스 연금개혁법안=퇴직자에게 연금을 지급하는 시점을 2018년까지 점진적으로 60세에서 62세로 늦추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예를 들어 55세에 퇴직한 경우는 연금을 받기까지 5년이 아니라 7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연금액의 100%를 다 받을 수 있는 시점도 65세에서 67세로 조정하는 내용도 법안에 담겨 있다. 프랑스는 근로자가 퇴직연금을 받는 기간이 평균 21.7년으로 미국·영국·독일에 비해 4년 이상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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