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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 시평

"다시 탄핵이 와도 나는 의사봉을 잡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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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일년 전 오늘 국회에서는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발의되었다. 그리고 사흘 후인 3월 12일 오전 11시55분. 당시 박관용 국회의장은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음을 알리며 의사봉을 두들겼다. 국회에서 대통령이 탄핵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당시 질서유지권을 발동해 가며 기어이 탄핵소추안을 상정하고 가결되었음을 알리는 의사봉을 3타 했던 박관용 전 의장이 책을 냈다. 책 제목이 이렇다. '다시 탄핵이 와도 나는 의사봉을 잡겠다'.

박 전 의장의 책 제목에는 일년 전 16대 국회의 탄핵안 발의와 상정은 절차상 정당했고, 다시 곱씹어봐도 그것은 결코 부끄러운 헌정사가 아니며, 비록 쓰리고 힘들었지만 그 나름대로 분명한 의미가 있는 역사적 사건이었다는 소회가 담겨 있는 듯하다.

탄핵은 헌정 사상 초유의 사건이었고 그 파장 역시 엄청난 것이었다. 하지만 일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마치 오래전 일처럼 탄핵을 잊고 있다. 아니 의식적으로 그것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있다. 하루에도 수많은 뉴스가 쏟아지는 요즘이지만 어디에도 탄핵 이야기는 없다. 그것이 우리에게 던진 숙제와 여진을 생각할 때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 만큼 이제는 최소한 왜 그런 일이 벌어졌고 그것이 우리에게 남긴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냉정히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모두 입을 닫고 있다. 재갈이 물린 듯싶다. 심리적 재갈 말이다.

탄핵의 출발점은 대통령의 선거개입 혐의에서 비롯되었다. 헌재도 지적했듯 대통령은 분명히 법을 어겼다. 하지만 정작 탄핵을 가능하게 했던 진짜 근원은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심정적 저수지의 물이 넘치고 있었던 데 있지 않았을까. 물론 그 저수지는 지금도 마르지 않은 듯 보인다. 어쩌면 대통령 임기가 끝날 때까지도 그럴 지 모른다.

그래서 일년 전 탄핵은 나름의 법률적 절차를 밟았지만 다분히 심정적인 면도 강했다. 탄핵의 빌미는 선거법 위반이었지만 정작 진짜 도화선은 따로 있었다. 대통령이 자신의 형과 관련된 문제를 해명한답시고 이말 저말 하다가 결국 고(故) 남상국 사장에 대한 힐난성 발언을 낳았고 그것이 남 사장의 한강 투신자살로 이어졌다는 것이 당시 세간의 동정어린 심정이었다.

탄핵안을 발의했던 야당 의원들도 처음에는 발의 정도에서 그칠 요량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남 사장 사건이 심정적 도화선이 되어, 결국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흐름을 타고 말았던 것이다. 역사는 우연과 필연의 교합이다. 한 번 쏠리면 걷잡을 수 없는 법이다.

물론 탄핵소추안의 국회통과는 엄청난 탄핵후폭풍을 몰고 왔다. 거기엔 아무리 불만스러운 대통령이라도 그나마 자리에 있으면서 생기는 혼선이, 아예 자리 비우고 없으면서 생길 예측 못할 불확실성의 두려움보다는 차라리 낫다는 세간의 또 다른 정서가 작용했던 것 같다. 순식간에 탄핵 찬성은 악, 탄핵 반대는 선이라는 이분법이 대세처럼 만들어졌다. 그 덕분에 여권, 즉 열린우리당은 17대 총선에서 압승했다.

탄핵은 정치적 쓰나미였다. 하지만 돌아온 대통령은 폐허를 재건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과거사.국가보안법 등 이른바 개혁입법에만 매달렸다. 국민이 바란 것은 제발 조용히 잘 먹고 편안히 좀 살자는 것이었는데 그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국민의 마음이 또다시 소용돌이친 것은 당연했다.

국민이란 바다의 해류는 어디로 쏠려가는 지 아무도 모른다. 이헌재 전 부총리의 사표를 수리한 대통령이 '해일처럼 밀려온 여론에 장수를 떠내려 보낸 심정'을 직접 토로했듯이 결국 대통령도 국민이란 바다 위에 떠있는 작은 배일 뿐이다. 그래서 국민이 두려운 것이다.

탄핵은 잊혀진 역사가 되었다. 하지만 일년 전 박관용 전 의장이 탄핵소추안 가결을 선포하며 의사봉을 두들길 때 남긴 말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래도 역사는 전진한다." 그렇다. 대한민국은 다시 전진해야 한다.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좁다랗게 싸우지 말고 크고 굵직하게 나아가 보자. 제발!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