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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3. 끝없는 편력 <11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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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성진이가 우리들의 등을 밀어서 동화의 주방으로 몰려 들어갔다. 주방장이며 일하는 아가씨들과 얘기하고 섰던 노랑괭이 할머니가 놀란 눈을 홉뜨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 얘들이 여기가 어디라구 들어와?

- 저어 수영이 학교 나간다구 그래서 머리 깎아 줄라구요.

성진이가 그렇게 얘기했더니 사장 할머니는 새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거 잘하는 일이다. 아주 바싹 깎아버려!

그렇게 해서 우석이가 주방 구석에 오리의자를 놓고 나를 앉히고는 머리를 깎았다. 그도 남의 머리를 깎아보기는 처음이라는데 과연 솜씨가 형편없어서 자꾸만 생머리카락을 뜯곤 했다. 아이들 말로 고필이가 이발소에 가면 아무리 삭발이라도 바짝 깎는 건 흉하다고 생각해서 대개는 '이부로 해줘요'하기 마련이고 이발사는 바리깡에다 덧날을 끼우던 것이다. 과연 바짝 깎아놓은 머리는 좀처럼 자라지 않았고 귀 옆이 허전하게 비어 있었다.

내가 사상계 잡지사에 가서 작은 소란을 일으킨 얘기를 하려고 이렇게 머리 깎은 얘기가 길어져 버렸는데. 오후 다섯시쯤이었을 것이다. 가판 신문이 거리에 깔리고 난 직후였을 테니까. 상득이 인상이 등이 동화의 문을 밀치고 들어서더니 구석에 쭈그려 앉은 내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저것들이 오늘따라 왜 저러나.

- 너 이거 봤니?

상득이가 신문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내 단편소설 '입석부근'이 사상계 신인상에 입선되었다는 기사가 나와 있었다. 세 사람이 뽑혔는데 서정인의 '후송'이 당선작이었고 나는 박순녀의 '아이 러브 유'와 함께 입선이라고 했다. 그날 상득이가 우리들을 데리고 길 건너 미도파 옆에 있던 중국집 이층에 올라가서 배갈을 샀다.

이튿날 종로에 있던 사상계사로 찾아 갔는데 편집실 사람들은 내가 들어서서 주뼛거릴 때까지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다. 그때 맞은편에 앉았던 사내가 나를 보더니 말했다.

- 뭡니까…?

- 저어, 연락받고 왔는데요.

- 연락? 무슨 연락?

하면서 그는 너희는 아느냐고 묻는 것처럼 주위의 직원들을 둘러보았다.

- 저 제가 바로….

내 이름을 대니까 그는 나를 멀뚱히 쳐다보다가 큰 소리로 말했다.

- 뭐야 까까머리 학생이잖아. 정말이야 이거? 당신 형이 써준 거 아냐?

그가 나중에 가까워진 소설가 한남철이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 내 얼굴이 중학생처럼 어려 보여서 정말 놀랐다고 말했다. 그가 나를 앉으라고 하고는 몇 마디 물은 뒤에 편집자들을 소개하고 나서 사장인 장준하에게 데려갔다. 그는 예의 그 가운데로 가르마를 탄 머리를 하얀 손가락으로 연신 쓸어 올렸고, 손을 내밀더니 십대 소년인 내 손을 잡고 흔들었다.

- 이번 작품들이 모두 수준이 높다고 하던데, 나도 학생을 만나고 놀랐습니다.

그림=민정기
글씨=여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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