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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덕의 13억 경제학]중국경제 콘서트(31) ‘골 넣을 줄 아는 정치인’

중앙일보

입력

일반적으로 국가가 있고 그 다음에 당이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한민국이 있고, 그 다음에 한나라당이 생겼듯 말입니다. 국가 안에 당이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중국은 반댑니다. 당이 먼저 생기고 국가가 생겼습니다. 공산당이 생긴게 1921년 이었고, 그 공산당이 혁명을 통해 1949년 세운 나라가 바로 '중화인민공화국'입니다. 공산당이 낳은 자식이 바로 현대 중국이라는 얘깁니다. 당 안에 국가가 있는 것이지요. 그 게 바로 중국 이해의 첫 걸음입니다.

중국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沒有共産黨, 沒有新中國(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도 없다)'

중국 경제발전은 국가가 주도합니다. 그 국가를 움직이는 게 '파워 하우스' 공산당이지요. 그러기에 그 공산당을 누가 이끌어가고, 또 리더들의 성향이 어떤지는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중국 공산당 리더십의 성향은 이제 중국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 정세에서도 핵심적인 사안이 됐습니다. G2의 나라이니까요.

크게 볼 필요도 없습니다. 중국 비즈니스에서 '정치'는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중국이 어디로 가고 있는 지, 그 큰 물결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중국에서 주재하고 계신분들은 이 점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그렇다면 중국의 리더십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지난 5일 저희 중앙일보 중국연구소가 중국 리더십 분야 권위자인 리청(李成.Cheng, Lee)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썬톤차이나센터 연구주임을 초청해 강연을 들었습니다. 300여 명이 참석해 강연을 들었는데요, 아주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중국 리더십 분야 까막눈이었던 저가 새로운 눈을 뜨게 만든 계기였습니다.

리청은 2012년 등장할 제5세대 리더십 구성을 크게 2부류로 나눕니다. '대중(Populist)그룹'과 '엘리트(Elite)그룹'이 그것입니다.

리청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두 그룹은 경제를 보는 관점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엘리트 그룹은 주로 동부연안 경제개발 지역에 정치적 기반을 둔 정치인이 많다. 시진핑(習近平)등 태자당 출신이 핵심 구성원이다. 그들은 경제발전을 경험했기에 분배보다는 성장에 관심이 많다. 기업의 자율성을 강조하고, 자유주의적 성향의 경제정책을 선호한다.
반면 대중그룹은 내륙에서 성장했거나, 중앙권력 주변에서 맴돈 정치인이 많다. 리커창(李克强)부총리 등 공청단 출신의 '퇀파이(團派)'인사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성장일변도 정책 보다는 균형적이고 지속가능한 성장에 방점을 둔다. 후진타오 주석이 그렇듯 이들은 성장을 중시하면서도 조화를 강조하고, 노동자의 복지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중국의 정치구조는 집단지도체제입니다. 9명의 정치국 상임위원들이 나라를 관리하는 구조이지요. 그들은 서로 견재하고, 협조하면서 나라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고위 리더들의 성향 분석이 중요하고, 리청 박사의 '대중그룹 vs.엘리트그룹' 주장은 효용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이 두 그룹을 리더는 누굴까요. 지금 대중그룹의 리더는 후진타오입니다. 후 주석은 권력을 '정치적 수제자'인 리커창 부총리에게 주고싶어 했지요. 엘리트 그룹의 리더는 시진핑 부주석입니다. 리청 박사는 둘을 비교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시진핑은 군부와의 연계가 강하고, 정치 캠페인에도 유능하다. 그러나 태자당 출신으로 강력한 추종자가 없다는 게 약점이다. 리커창은 겸손하고 오랫동안 지방(허난성·랴오닝성)에서 근무해 민간의 인기가 높다. 그러나 큰 문제를 해결한 업적이 없고, 외교적 경력이 부족하다는 단점도 있다./

둘은 그동안 권력을 향한 치열한 레이스를 펼쳐왔습니다. 리커창은 후진타오 주석의 후광을 업고 달려왔지요. 공청단 계파의 제5세대 대표 주자입니다. 시진핑은 태자당이자 상하이방의 핵심 인사였던 쩡칭홍(曾慶紅)전 부주석이 적극 밀었습니다. 그 덕택에 9명의 리더그룹인 정치국 상임위원회에 들어올 수 있었지요.

여기에서 재미있는 얘기 한 토막. 시진핑과 리커창이 산에서 호랑이를 만났습니다. 호랑이에 잡혀 먹힐 위험한 상황. 그 와중에서 시진핑이 신발끈을 고쳐 맵니다. 이를 보고 리커창이 웃었습니다. '야, 니가 신발끈 조인다고 호랑이보다 빨리 달리 수 있게냐?' 이 말을 들은 시진핑이 한 마디 합니다. '그래도 너보다는 빠를 수 있잖아'

둘의 경쟁관계를 풍자한 말입니다.

그 게임은 이제 끝났습니다. 지난 18일 끝난 17기5중전회에서 시진핑이 군사위원회 부주석으로 승진했기 때문입니다. 군사위원회 부주석 자리는 당 총서기-국가 주석으로 가는 길입니다. 시진핑이 이제 그 길을 걷게 된 겁니다. 별일이 없는 한 시진핑은 2012년 후진타오의 뒤를 이어 제5세대 최고지도자로 등장할 겁니다.

리커창 현 부총리는 총리로의 승진이 유력합니다. 시진핑 국가주석-리커창 총리 체제가 형성되는 것이지요. 엘리트그룹과 대중그룹의 권력 분점입니다. 다만 변수가 없지 않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리커창 대신 왕치산(王岐山)부총리의 총리 승진을 예상하기도 합니다. 두고 볼 일입니다.

그렇다면 시진핑은 어떤 인물일까요? 이미 그의 정치적 배경과 이력, 성향 등에 대한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저는 경제정책을 중심으로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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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당당하되 자만에 빠지지 않고(自豪不自滿)
드높게 일을 추진하되 떠벌리지 않고(昻揚不張昻)
실질에 힘쓰되 조급해하지 않는다(務實不浮躁)

중국의 차세대 리더 시진핑(習近平·57)부주석의 좌우명이다. '겸손한 태자당(太子黨·고위 관리의 자제)'이라는 별명에 어울린다. 그는 다른 태자당이 권력의 중심을 고집할 때 지방으로 내려갔고, 다른 고위 간부 자제들이 허세를 부릴때 신중함을 잃지 않았다. 홍콩에서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표현도 나온다. G2 중국의 후계자(接班人)시진핑, 그가 펼쳐갈 정책에 세계 이목이 모아지고 있다.

◆'골 넣는 정치인'

2006년 9월 19일. 쩌장(浙江)성 당서기 시진핑은 특별 손님을 맞는다. 헨리 폴슨 당시 미국 재무장관이었다. 그 해 골드만 삭스에서 자리를 옮긴 그는 중국을 70여 차례나 드나든 '중국 통'. 장관 취임 후 첫 중국 방문 도시로 베이징이 아닌 항저우를 선택했다. 그들은 항저우의 아름다운 호수 시후(西湖)주변을 거닐며 한담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박장대소를 하는 사진이 미국 신문에 실리기도 했다. 덕택에 여럿 제5세대 지도자 후보에 불과했던 시진핑은 서방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도대체 무슨 사이이기에….' 시진핑과 폴슨은 5년 여 전 투자 문제로 만나 관계를 유지해 온 라오펑요(老朋友)였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폴슨이 미국 재무부 관리들에게 차세대 지도자 시진핑을 소개시켜주기 위해 항저우로 달렸다"고 설명했다. 시진핑이 세계 각지에 구축하고 있는 '인맥 쌓기'의 단면을 보여준다. 해외에 폭넓게 구축된 인맥은 G2시대 그의 정치적 자산이다.

헨리 폴슨 장관은 시진핑에 대한 평가를 묻는 기자 질문에 당시 이렇게 답했다.

'골 넣은 방법을 아는 사람이다'
(The kind of guy who knows how to get things over the goalline)

결정적인 순간에 필요한 일을 적절히 저리할 줄 아는 정치인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로부터 4년 후. 시진핑은 지난 18일 폐막된 중국공산당 17기 5중전회에서 당중앙군사위 부주석으로 승진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골을 넣는 선수임을 다시 한 번 입증한 것이다. 그는 별 이변이 없는한 2012~2022년 동안 중국을 이끌게 된다. 골드만 삭스가 '중국의 경제력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고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한 바로 그 시기다.

◆'두 마리 새를 키워라'

시진핑 부주석의 경제정책 성향을 정확히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다만 그의 주 정치무대였던 푸젠과 쩌장성에서의 활동에서 가늠할 수 있다. 그 중 '양조론(兩鳥論·두 마리 새 이론)이라는 게 있다.

"전설상의 불사조(봉황)가 불에 뛰어들어 더 화려하게 재생하듯(鳳凰涅槃 欲火重生), 산업체질을 환골탈태해야 한다. 새 장을 들어 참새를 바꾸듯(騰籠換鳥),산업구조의 고도화를 이뤄내야 한다. 장수가 독사에 물린 팔뚝을 잘라내듯 과단성있게 경제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그가 상하이 당서기로 자리를 옮기기 1년 전인 2006년 3월 중국관영 CCTV의 '중국경제 대강단'프로그램에 나와 한 말이다. 산업 체질 강화와 구조조정이라는 두 마리 새를 키우라는 얘기였다. 중국 언론은 "시 부주석이 겉으로는 온화하고, 신중한 모습이지만 특정 사안과 부딪치면 강단있는 모습을 보여준다"며 "특히 경제 개혁에 대해서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왔다"고 평가했다.

그렇다고 시 부주석이 후 주석의 중앙권력과 대립각을 세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앙 정책을 가장 먼저 이해하고, 추진한 지방 관리로 평가받고 있다. "당의 통치를 유지하고, 당의 단결을 보호하는 것이 내가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게 그의 정치관이다. 그는 2004년 후 주석이 균형성장·빈부격차 축소 등을 핵심으로 한 '과학발전관(科學發展觀)'·'화해사회(和諧社會)를 주창하자 '절강화해(浙江和諧)'구호로 화답했다. 중앙정부의 정책을 충실히 따르겠다는 선언이다. 후 주석이 시진핑을 상하이 당서기로 끌어올린 것도 이 때문이다.

홍콩의 정치분석가 우밍은 "후 주석이 장쩌민의 지도노선을 충실히 따르며 때를 기다렸듯, 시진핑 역시 시기를 기다릴 줄 아는 정치인"이라며 "남을 적으로 만드는 것은 시 부주석의 생리에 맞지도 않다"고 분석했다.

◆'국부(國富)에서 민부(民富)로'

17기 5중전회에서는 12차 5개년 계획(2011~2016년)의 밑그림도 제시했다. 시진핑 시대의 경제정책 청사진이다. '국부(國富)에서 민부(民富)로'가 이 계획의 핵심이었다.

중국은 지난 30여년 동안 '부강한 국가 건설'을 목표로 정책을 추진해 왔다. 성장에 촛점을 맞췄다. 이를 위해 국가(정부)-국유기업-국유은행으로 이어지는 '성장의 삼각편대'가 형성됐다. 특히 이번 세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국진민퇴(國進民退·국가의 역할 증대와 민간의 퇴출)현상이 심화됐다. 국가가 자원을 장악하는 구조에서 국유기업은 더욱더 강해졌고, 고용의 70%를 담당하는 민영기업은 상대적으로 낙후될 수밖에 없다. 국가는 배부르고 국민은 헐벗은 꼴이다.

그러나 이같은 국가 주도 성장 시스템으로는 지속적인 성장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게 당 지도부의 생각이다. '민부(民富)'가 나온 배경이다. 자유주의 성향의 천즈우(陳志武)교수는 "국유체제가 전체 생산량의 60~70%를 차지하고, 재부의 4분의3을 국가가 관리하는 이 상황은 시장경제에 근본적인 도전"이라고 지적했다. 국가의 부(富)의 독점은 부패를 낳고, 국가-국유기업-국유은행은 '부패의 트라이앵글'로 변했다.

이제부터는 성장의 혜택을 민간이 누릴 수 있도록 경제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게 민부(民富)의 핵심이다. 성장 동력을 기존의 투자·수출 위주에서 내수시장 중심으로 바꾸고, 친환경·고기술 분야 등의 개발을 통해 지속발전 가능한 체제를 갖추자는 취지다. 노동자들의 복지향상을 위해 최저 임금도 크게 인상될 것으로 보인다. 후 주석의 정치·경제 지도노선인 '과학발전관(科學發展觀)'을 구체화했다.

시진핑 부주석은 '민부'에 대해 이견이 없다. 다만 추진 방법에 미묘한 차이가 발견된다. 그가 주장하는 '민부'는 복지확충이라기 보다는 민간의 자율성 확대를 뜻한다. 민간기업과 민간자본에 대한 규제를 풀어 부의 균형추를 민간 쪽으로 돌리자는 차원이다. 차기 체제로 유력시되면 '시진핑 주석'과 '리커창 총리'는 이 문제로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다.

중국 리더십 전문가들은 그러나 "시진핑 부주석은 후진타오 주석으로부터 권력을 완전히 물려받기 전까지 자신의 색깔을 노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후 주석이 자신의 지도노선인 과학발전관을 집권 2년이 지나서야 제시했듯 말이다.

후 주석이나 시 부주석 모두 '나무가 수풀보다 빼어나면 반드시 바람에 꺾인다(木秀於林,風必최之)'는 평범한 진리를 잘 알고 있다.

한우덕 기자 wood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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