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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출신 전문의 "연예인 우울증은 상상 초월"

중앙일보

입력

1990년대 초반 국내 최초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보였던 그룹 SOS의 멤버 박성희씨가 고 이은주의 자살과 관련, '연예인의 우울증'에 대한 전문가적 의견을 밝혔다.

▶ 박성희씨

박씨는 이화여자대학교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박씨는 최근 고 이은주의 자살과 관련해 머니투데이 스타뉴스에 '연예인과 우울증'이라는 글을 전달해 왔다. 박씨는 자신의 연예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연예인과 우울증'이라는 글을 통해 우울증의 위험성 및 그 해결방안에 대해 제시했다.

다음은 박씨가 스타뉴스 앞으로 보내 온 '연예인과 우울증' 전문.

이은주씨의 자살 사건 이후 ‘우울증’이 사람들에게 크게 주목받고 있다. ‘우울증’이라는 키워드는 각종 인터넷 사이트의 인기 검색어 상위순위에 랭크되고 있다. 실제로 이 사건 이후, 우리 상담소에도 우울증에 대해서 의뢰해오는 사람들의 수도 눈에 띄게 증가하였다.

며칠 전 일반인들을 상대로 조사했더니 이미 100명 중 71명이 우울증 증세를 지니고 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 우울증은 흔히 심리적인 감기라고 불릴 만큼 흔한 병이지만 우울증의 환자의 15%가량이 자살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하는 병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오늘 말하고자 하는 것은 좀 더 한정된 직업인 연예계에 종사하는 이들의 우울증에 관한 이야기이다. 감히 추측건대 연예인들은 일반인들보다 훨씬 윗도는(90% 이상은) 비율로 우울증을 경험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좀 독특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현재 샤론정신건강연구소의 소장으로 일하고 있는 나는 예전 연예계 생활을 경험한 상담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이은주씨의 자살소식을 들으면서 안타까움과 동시에 ‘드디어... 일이 터졌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동시에 뭔지 모를 죄책감과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사명감도 느껴졌다.

나는 어릴 적 연예계의 생리를 경험했다. 그리고 연예계에 종사하는 친구들도 많다. 새삼 고 이은주씨의 이야기를 꺼낼 필요도 없이 나는 그동안 우울증에 대해서 연구할 때마다 내 친구였던 연예인들을 떠올렸었다. 우울증은 연예인이 되고자 하는 스타 지망생, 이미 톱스타, 잊혀지는 스타 모두에게 골고루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일단 스타급 연예인이 되는 길도 너무나 멀고 험하다. 단지 실력만으로 연예인의 정상의 고지를 차지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운이 좋아서, 인맥이 좋아서 등... 예측할 수 없는 가도를 달려야한다.

게다가 연예인을 꿈꾸는 이들은 자신을 위한 외적 투자나 내적 투자도 많이 해야 하고, 만나게 되는 이들도 부유층이 많아 일반인들보다 훨씬 많은 생활비가 필요하다. 그러나 고정적인 수입이 없는 연예인 초년생들은 꿈과 현실의 사이에서 너무나 많은 갈등을 겪게 되고, 연예계의 생활이 너무나 화려하기 때문에 현실에서의 자신의 평범한 모습이 더욱 비교되어 괴로움을 유발시킬 수도 있다.

어쩔 수 없이 많은 유혹에도 노출되어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정도를 지키며 원칙대로 살아가려는 스타지망생은 거의 대부분이 심한 좌절감을 느끼기 쉽다. 또한 유혹에 넘어가서 쉬운 길을 택하려는 지망생들도 결국 감당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고 대개 그것들을 혼자 감당해야하기에 우울증에 빠질 위험이 높다.

특별히 재능이 많거나 운이 좋아, 톱스타 자리에 오른다고 해도 심리적인 괴로움은 첩첩이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대중은 냉정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기에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항상 긴장해야하고, 불안을 경험한다. 아무리 타고난 성격이 좋다고 하더라도 특별히 심한 경쟁의 삶 속에서 동료에 대한 경계심과 시기심을 항상 경험할 수 밖에 없다.

또한 톱스타들은 어디서나 완벽한 아름다움을 기대받는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놀라울 정도의 아름다움과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고 해도 스타라면 조금만 주름이 생겨도 사람들의 질타를 받는다. 모든 이들에게 항상 최고의 연기와 아름다움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은 항상 마음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

사생활이 주어지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누구나 명예나 인기에 대한 욕구가 있듯이 자신만의 자유에 대한 욕구도 있다. 그러나 톱스타에게는 ‘자연인으로서의 나’가 주어지지 않는다. 설사 주어진다고 해도 극히 제한적인 시간과 공간에서이다.

이들은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아무 곳에도 갈 수가 없고, 마음껏 연예도 어려운 상황이라 이런 스트레스를 풀 곳도 없다. 스트레스라는 무게를 내려놓을 곳이 없는 경우 극단적인 자살이나 마약 등에 빠지기 쉽다.

또한 나는 스타가 된 후 실제적인 가장이 되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그러나 온 식구의 경제적인 책임을 지고 있다는 사실은 또다른 엄청난 양의 부담감이 된다. 가족들이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게다가 스타의 가족들은 소년소녀가장의 가족과는 달리 그 씀씀이가 스타 못지않다.

마지막으로 정상의 자리에서 밀려나는 단계이다. 안타깝게도 모든 톱스타는 모두 이 단계를 경험하게 되어있다. 톱의 자리에서 밀려나거나, 혹은 자의로 그만두는 경우라도 이 때는 그야말로 심리적인 괴로움의 최정점의 상태가 된다.

아무리 낙천적이고 행복하게 연예계 생활을 해왔다고 할지라도 이 단계에서는 연예인 대부분 상당한 충격을 경험한다. 그동안의 혜택, 인기, 명예, 실질적인 수입이 현저히 감소하게 될 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자존감 수치도 급격히 낮아진다.

처음부터 자존감이 낮은 경우라도 자존감의 문제는 사람을 가장 힘들게 하는 법이다. 하물며 최고의 정점에서 수직으로 직하강하는 것을 경험한다는 것은 무척 견디기 힘들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만일 어떤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킨 사건이라도 벌어진 상황이라면 그가 감당할 사회적인 시선은 견디기 어렵다. 잊혀진 스타가 무대를 잊지 못하는 것도 여러 가지 심리적 괴로움을 유발한다. 무대는 일종의 중독성이 있다. 비단 연예인들이 아니였다고 해도 인생의 최고의 전성기를 못잊어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최고의 인기를 맛보았던 스타는 더욱 힘들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연예인이었던 이들은 다른 직업을 찾기도 힘이 든다. 수입은 현저히 줄었지만 이미 유명해진 자신의 품위유지를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하기에 경제적인 문제의 스트레스도 심하다. 이런 이중, 삼중의 고통은 심리적, 육체적 병을 일으킬 가능성을 준다.

이들이 심리적, 사회적으로 빨리 균형을 찾지 못하는 경우 가정이 깨어지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 가족들도 극도의 고통을 경험하지만 가장 괴로운 이는 연예인 당사자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일반인들보다 연예인들은 상담전문가를 만나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비밀보장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상담이 또 하나의 위험요소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람을 경계할 수 밖에 없는 연예인들에게는 당연한 심리이다.

그러나 연예인들은 일반인들보다도 훨씬 많은 빈도로 우울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팬들과 연예 기자들로부터 보호되고 비밀이 보장되는 심리상담 서비스가 꼭 필요한 실정이다.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김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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