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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트너의 추진력 “실용적 해결책 찾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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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 참석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왼쪽)과 티머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이 22일 오후 리셉션장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경주=연합뉴스]

“47세의 가이트너는 32세로 보인다. 자격이 없다는 게 아니라, 그렇게 보인다는 얘기다.”

 미국 레이건 정부에서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낸 켄 듀버스타인은 2008년 말, 오바마 정부의 재무장관 하마평에 오르내리던 티머시 가이트너를 이렇게 비꼬았다. 당시 뉴욕 연방은행 총재이긴 하지만 시장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은 ‘애송이’란 의미에서다. 그러나 그는 금융 개혁, 부동산 시장 안정화 등 미국 내 경제 이슈부터 환율 갈등 등의 대외관계까지 두루 관장하며 오바마 정부의 핵심 브레인으로 활약하고 있다.

 가이트너는 23일 폐막한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도 적잖은 존재감을 과시했다. 회의 첫날 만찬을 앞두고 열렸던 리셉션은 당초 계획(15~20분)보다 2배 가까이 늘어졌다. 가이트너가 늦게 도착했기 때문이다. 그가 도착하자 곧바로 만찬이 시작됐다. 모든 일정을 끝내곤 의장국인 한국에 이어 두 번째로 공식 기자회견을 열었다. 외신기자들의 질문도 그에게 쏟아졌다. 보이는 것 외에도 경주 회의 곳곳에서 그의 활약이 있었다. 회의에 앞서 편지를 보내 논의 초점을 좁히고, 선진국과 따로 만나 양보를 이끌어냈다.

 ◆초점 집중시킨 편지=가이트너는 회의 개막 직전, G20 국가들에 편지를 보냈다. “향후 몇 년간 대외수지 불균형(흑자 또는 적자)을 국내총생산(GDP)의 특정 수준을 넘지 않도록 하자”는 게 핵심이었다.

 각국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해 통화가치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것을 삼가자는 내용도 있었다. 회의 개최 전부터 초미의 관심사였던 환율 문제를 먼저 치고 나선 것이다. 그는 앞선 6월 부산 회의에서도 “금융규제에 대한 신속한 합의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바 있다.이번 편지를 놓고선 ‘G20 국가에 건넨 얘기지만, 결국 중국을 겨냥한 편지’(로이터)라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이 “환율 문제를 풀기 위해선 논의의 초점을 교역으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한 아이디어를 검토한 후,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되자 적극적으로 나선 셈이다.

 결과는 그의 편지 내용대로 됐다. 국제통화기금(IMF)에 각국 감시자 역할을 주자는 내용도 공동선언(코뮈니케)에 포함됐다. 이에 대해 G20 준비위(준비위) 관계자는 “다양한 이유로 미국이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설명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다음달 2일 중간선거라는 취임 후 첫 시험지를 받아들게 된다. 높은 실업률과 가라앉은 주택 가격 등에서 벗어나지 못해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 패배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결국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환율 갈등을 해소해 금융시장을 안정시켜야 하는 과제가 있었던 셈이다. 미국 언론은 이번 회의와 관련해 가이트너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경주 회의 소식을 전하며 “G20이 가이트너의 환율과 교역 관련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썼다.

 ◆유럽 양보 얻어낸 별도 모임=환율 문제는 중국의 양보가 있었다고 풀이할 수 있다. 그간 환율 문제와 관련해 중국을 향해 날을 세우던 가이트너도 회의가 끝난 후엔 “중국이 건설적이고 실용적인 대화에 참여해 국제공조에 적극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양보가 있었다면 반대급부 또한 필요한 게 국제사회다. 과대 대표국에서 과소 대표국으로 이전할 IMF 쿼터를 기존(5%)보다 1%p 늘렸고, 이의 구체적인 배분안도 합의됐다. 이는 신흥국, 특히 중국에 준 선물이다. 이번 합의로 중국의 IMF 지분은 세계 6위에서 미국과 일본에 이은 3위가 된다.

 막후에는 가이트너가 있었다. 그는 경주에서 회의를 전후해 선진 7개국(G7) 참석자들을 만났다. 준비위 관계자는 “미국이 G20 내 일부 국가들과 별도로 만난 것은 IMF 쿼터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고 전했다. 그는 이 모임을 통해 지분을 양보해야 하는 유럽 국가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했다. 이번 IMF 개혁안은 “역사적인 합의”(스트로스 칸 IMF 총재)라는 평가를 받았다. 

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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