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지방이 경쟁력이다] 비금도 시금치 '섬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5면

▶ 전남 신안군 비금도에서 주민들이 밭에서 수확한 시금치를 나르고 있다. 겨울 한철 농사로 가구당 800만원의 소득을 올린다.비금도=양광삼 기자

전남 목포항에서 서쪽으로 50㎞떨어진 신안군 비금도. 1일 오전 목포에서 쾌속선으로 1시간10분가량 달려 이곳에 도착하니 선착장 한쪽에서는 25t 화물차 3대가 '섬초'란 상표가 붙은 시금치 상자를 가득 싣고 뭍으로 나가기 위해 '비금농협 카페리호'(257t급)에 오르고 있었다. 이 섬의 논.밭에는 푸릇푸릇한 시금치들이 심어져 있고 곳곳에서 수확이 한창이었다.

이 시금치가 비금도 주민(4000여명)들의 주 소득원이 되고 있다. 토종에다 한겨울 추위 속에서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전통적인 노지방식으로 키워 개량종인 일반 시금치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한산마을 주민 유정희(75)씨는 "한겨울에 찬바람과 눈.비를 맞고 자라 어설퍼 보여도 이게 우리 섬사람들에게 큰 돈을 가져다 준다"고 말했다.

◆ 겨울 시금치의 40% 생산=비금도에선 전체 1780가구의 57%인 1010농가가 겨울철마다 시금치를 재배하고 있다. 밭은 콩.산두(밭벼).단호박.고추 등을,논은 벼를 재배한 뒤 9월 하순에 시금치 씨앗을 뿌려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보통 2~3차례에 걸쳐 수확한다. 생산량은 15㎏ 들이 42만여상자(6300t),약 80억원어치. 겨울 한철 농사로 가구당 800만원의 수입을 올리는 셈이다.

비금도 시금치는 인기가 좋아 생산량의 78%가 서울 가락동 농산물도매시장으로 나가는 등 97% 이상이 수도권에 출하되고 있다.

비금면 출신의 김형진(59)신안군의회 의원은 "섬내 소비를 위해 조금씩 심던 시금치가 맛이 좋다고 뭍에 알려지면서 1980년대 상업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효자 작목으로 자리잡았다"고 밝혔다. 그는 "전국에서 유통되고 있는 겨울 시금치의 40%는 비금도 시금치"라고 말했다.

◆ 토착 재래종으로 승부=비금도 시금치는 일제시대부터 길러 온 재래종. 때문에 뿌린 씨앗의 발아율이 낮고 수확량이 개량종보다 20%가량 적다. 또 병충해에 약하고 땅바닥 쪽으로 붙어 자라 일손이 많이 든다.

그러나 맛이 뛰어나 운송비가 많이 드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전국 시금치 시장을 주름잡고 있다.

우선 당도가 높아 데친 뒤 그냥 무쳐도 달착지근한 맛이 나고 씹히는 느낌이 좋다.

신안군 농업기술센터의 조진언(48)지도사는 "품종이 재래종인 데다 토양에 게르마늄 성분이 많고,갯벌을 일군 땅이어서 산성화가 덜 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추위와 바닷바람, 눈.서리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잎이 두껍다. 이로 인해 개량종처럼 금방 시들지 않고,삶아도 흐물거리지 않고 씹으면 날것을 먹는 것과 같은 기분을 느낀다. 모양도 다르다. 일반 시금치는 위로 자라 직립형이지만 비금도 것은 옆으로 퍼진 형태이고, 가운데는 배추 속처럼 노랗다.

◆ 비싼 값에 팔려 고소득=비금도 시금치는 상품성을 인정받아 비싼 값에 팔리고 있다. 성수기인 설 명절과 정월 대보름 사이에는 도매시장 경락가격이 상자당 3만~6만원에 이른다. 연평균 단가는 지난해의 경우 2만원으로, 일반 시금치의 갑절이나 된다.

계통 출하와 포장 개선도 상품가치를 높이는 데 한 몫했다. 1991년부터 농협이 나서서 물량을 일괄 수집한 뒤 도매시장에 상장시켜 경매에 부치게 했다. 포장은 원래 포대에 40㎏씩 넣던 것을 8년여 전부터 종이상자에 15㎏씩 담아 출하하고 있다.

비금도 시금치는 1996년부터 '섬초'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 비금농협은 브랜드가 생기면서 상자당 5000원 정도씩 더 받게 됐다고 분석하고 있다.

비금도 사람들은 1990년대 말 외환위기에도 그렇고,지금도 도시나 다른 농어촌과 달리 경제적으로 별 어려움을 모르고 산다고 말한다.

윤창섭(51) 비금면장은 "우리 섬은 70살이 넘은 노인들도 한 겨울 시금치 농사로 500만원 이상을 거뜬히 벌어,신안의 수많은 섬 가운데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 섬이다"고 말했다.

신안군 비금도=이해석 기자 <lhsaa@joongang.co.kr>
사진=양광삼 기자 <yks2330@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