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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정운영 칼럼

새벽닭이 우는 뜻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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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선생님의 머리가 희어지셨네요."

"사람의 머리는 늙을수록 희어지고, 혁명은 나이 들수록 붉어지지요."

몽양 여운형(呂運亨)이 20년 연상의 중국 혁명가 쑨원(孫文)과 이런 인사를 나누었단다.

민족.민주.민생의 '삼민주의'를 앞세운 쑨원의 독립운동은 공산당과 국민당-좌와 우-의 지지를 함께 받았다. 몽양 역시 민족해방→민주혁명→사회개혁이란 조국 광복과 건설의 웅지를 펼쳤건만, 한민당은 아예 적으로 대했고 남로당마저 냉랭한 시선을 보냈다. 혁명도 붉은색도 금기인 이 땅에서 "나는 지식계급에 득죄할지언정 결단코 노농 대중에게 득죄하고 싶지 않다"는 그의 단심이 좌와 우 양쪽에서 배척당한 것이다.

몽양은 상하이 시절 '공산당 선언'을 번역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중국 국민당에-공산당이 아니고-입당했다. 옌안의 조선의용군 사령관 무정(武亭)은 "선생님이 국내에서 혁명운동을 하는 데는 회색도 좋고 흑색도 좋습니다"고 했단다. 변절과 기회주의란 시비가 따를 법했으나, 몽양에게는 그것이 '좌우 합작' 신념의 표출이었다. 1945년 11월 조선인민당 창당 인사를 통해 이렇게 외친다. "해방된 오늘 지주와 자본가만으로 나라를 세우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디 손을 들어보시오. 지식인.사무원.소시민만으로…. 농민.노동자만으로 나라를 세우겠다고 우기는 사람이 있다면 어디 한번 손을 들어보시오." 정치인의 레토릭을 들은 그대로 믿을 만큼 착하지는 않지만, 왠지 몽양의 이 외침에는 진실이-적어도 진실의 파편이-담겼을 것으로 믿고 싶다. "그렇습니다. 일제 통치기간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반역적 죄악을 저지른 극소수 반동을 제외하고 우리는 다같이 손을 잡고 건국 사업에 매진해야 합니다."

나는 여기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읽는다. 먼저 몽양의 말은 반역적 죄악이 아닌 한 다수를 포용하자는 뜻이겠으나, 해방된 강토가 회갑을 맞도록 그 극소수 반동마저 응징하지 않았다. 다음으로 1947년 7월 백주의 대로에서 울린 세 발의 총성이 몽양을 건국 대업에서 영원히 분리시켰기 때문이다. 당초 19세 룸펜의 '우국' 범행으로 발표되었으나 27년이 지난 1974년 공범의 자백으로 암살의 추악한 편모가 드러났다. 수도청장 장택상의 손길이 배후에 있었고, 반탁(反託) 행동대장 김두한이 검사를 협박하여 수사확대를 막았다는 것이다. 미친 세월이었다.

1919년 도쿄에서 일본 천황과의 담판을 통해 몽양은 독립을 열망하는 식민지 청년의 기개를 유감없이 전달했다. 설득에 지친 천황이 마침내 "여 선생이 조선 사람인 것이 아깝다"고 했고, 몽양은 배석했던 조카에게 "그가 우리를 살려준 것은 자비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무서워서 그랬어"라고 말했다(여연구, '나의 아버지 여운형', 김영사, 2001). 그리고 제국호텔에서 토한 사자후(獅子吼)는 재일 유학생과 지식인의 울화를 풀어준 시대의 신화로 기억된다. "한 집에서 새벽닭이 울 때 이웃집 닭이 우는 것은, 다른 닭이 운다고 따라 우는 것이 아니고 때가 와서 우는 것입니다."(이기형, '여운형 평전', 실천문학사, 2004) 1936년 조선중앙일보 사장으로 신문 폐간을 마다 않고 손기정 선수의 사진에서 일장기를 말소한 사건 역시 때를 알리는 새벽닭의 역할이었다.

몽양은 해방 공간에서 세계사적 안목이 가장 넓었던 정치인이다. 모스크바 3상회의 신탁통치 결정에 대해 "원색적인 감정은 눌러두고 냉철해야지. 임시정부 수립에 천재일우의 좋은 기회야"라고 받아들인다. 파업과 시위에 놀란 하지 군정사령관이 신탁은 '원조와 고문'이란 뜻이고, 공산당 또한 '후견과 후원'의 의미라고 해명했으나, 찬탁은 매국이고 반탁은 애국이란 원색적 감정을-국민적 정서를-뒤집지는 못했다. 반탁과 미.소 공위 결렬을 거치며 그 뒤의 역사는 분단과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흘러갔다. 과거를 청산하려면 반성할 줄도 알아야 한다. 남북의 유족에게 전달은 유보되었지만 이번 삼일절을 기해 정부는 여운형에게 건국훈장 2등급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그것이 과거사 정리의 한 매듭이자 '현대사' 복원의 한걸음이기를 바라면서, 나는 거기서 새벽닭이 우는 뜻을 찾고 싶다.

정운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