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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전우용의 근대의 사생활

‘연애’의 탄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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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면

1962년 세창서관판 『장한몽』의 표지. 『장한몽』은 ‘사랑과 돈, 주인공 사이의 삼각 관계’라는 현대적 연애 콘텐트의 기본을 갖추고 있었기에 여러차례 중간(重刊)됐다. 돈은 근대 연애가 세상에 나오자마자 마주친 가장 강력한 천적(天敵)이었다. ‘김중배의 다이아몬드 반지’는 지금도 수많은 콘텐트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순수한 사랑’들을 파탄시키고 있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 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했지요,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당신을 향한 마음 이승에서 잊을 수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16세기 남녀 간의 사랑을 묘사한 글들이다. 앞의 것은 유명한 황진이의 시조이고 뒤의 것은 어느 사족(士族) 부인이 남편 무덤에 넣은 편지의 한 구절이다. 이성 간의 사랑은 본능에 속하지만, 인류의 긴 역사를 통틀어 보자면 ‘미혼의 청춘 남녀’들이 서로 사랑하는 일은 아주 드물었다. 사랑이 결혼제도 안에서, 부부 사이에 자리 잡는 것은 그야말로 운이 좋은 경우에 속했다. 조선시대만 해도 기생들이나 사랑을 표현하고 순간이나마 실현할 수 있었다. 사랑은 결혼제도와는 무관했으니 ‘결혼의 전제는 사랑’ 이라는 생각이 들어설 공간은 없었다.
 
1913년 5월 13일, 『매일신보』?에 소설 ?『장한몽』?의첫 회분이 게재됐다. 조중환이 일본인 오자키 고요(尾崎紅葉)의 ?금색야차?를 번안해 연재를 시작한 것이다. 부모의 뜻에 따라 약혼했고 서로 사랑했던 이수일과 심순애의 비극적 행로를 그린 이 소설은 신파극으로도 무대에 올랐다. 극중에 불린 ‘대동강변 부벽루하 산보하는 이수일과 심순애의 양인이로다’로 시작하는 노래는 이후 수십 년간 한국인의 대표적 애창곡 자리를 지켰다.

 소설이 연재되고 극이 상연될 때만 해도, 두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미혼 남녀는 거의 없었다. 주인공의 감정을 이해할 나이가 된 사람들은 대개 기혼자들이었다. 그러나 이윽고 ‘사랑 없는 결혼은 비극’이요, ‘결혼은 연애의 완성’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소설·연극·영화·대중가요들이 쏟아져 나왔고 혼인 연령도 차츰 높아졌다. 연애소설들은 사랑을 표현하는 법, 밀어를 만들고 전달하는 법, 감정의 흐름을 조절하는 법, 접근하고 물러서는 법 등 시쳇말로 ‘밀당(밀고 당기기)’의 기술도 함께 가르쳐주었다.

 사랑과 연애는 20세기의 가장 성공적인 담론으로서 엄청난 양의 콘텐트를 생산했다. 그러나 이콘텐트들은 ‘연애의 완성’은 곧 ‘연애의 무덤’이라는 생각도 확산시켰다.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남의일이던 높은 이혼율이 순식간에 발등의 불이 됐다.

연애에 관한 콘텐트는 계속 쏟아져 나오지만, 결혼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대개 ‘그리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축약돼 있다. 지금은 그동안 축약해 버린 이야기들을 콘텐트화하는 데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인 듯하다.

전우용 서울대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