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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교에 새긴 6·25 학도병 453인 이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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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16일 서울고 교정에 453명 참전 동문 전원의 이름을 새긴 ‘6·25전쟁 참전 기념비’가 세워졌다. 160여 명의 참전 용사와 유가족, 700여 동문이 제막식에 참석했다. [오종택 기자]

“가! 너라도 살아.” “형을 두고 어떻게 혼자 가?” “그럼 나를 쏘고 가!”

 1950년 11월. 15세와 17세 소년병은 서로를 끌어안고 울음을 삼켰다. 6·25전쟁 중 평안남도 덕천에서 중공군에게 밀린 국군은 후퇴하며 많은 희생자를 냈다. 15세 포병 함경호군이 같은 학교 1년 선배 설규용군을 만난 것은 그때였다. 같은 교복을 입고 입대했던 그들이 40일 만에 패잔병 대열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설군은 피로와 배고픔으로 탈진해 있었다. “이 사람 교대로 업고 가자”는 함군의 제의를 다른 동료들은 외면하고 가버렸다. 홀로 남은 그가 설군을 들쳐 업었다. 며칠째 끼니도 거른 소년들에게 월봉산의 겨울바람은 매서웠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떼어놓게 하는 것은 ‘살고 싶다’는 본능이었다. 하루를 꼬박 걸었다. 산기슭 화전민 집을 찾아 들어가 강냉이를 얻어먹고서야 둘의 목숨은 아슬하게 생존에 안착했다.

 “설 선배, 우리 이름 여기 있어요.”

 2010년 10월 16일. 75세의 함씨는 모교인 서울 서초동 서울고에 서서 마음속 전우에게 말을 건넸다. 이날 이 학교 교정에는 이들의 이름이 새겨진 비가 세워졌다.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이 학교 동문회가 세운 ‘6·25 참전 동문 기념비’다. 여기에는 이 학교 출신 453명 참전 용사 전원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설씨는 이를 보지 못하고 5년 전 세상을 떠났다. 두 아들에게는 “전우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는 말을 여러 차례 남겼다.

 이 학교는 1~6회 졸업생 1198명 중 40%가량이 자원 입대해 6·25 전쟁을 치른 기록을 갖고 있다. 이 중 32명은 전장에서 산화했다. 나이 15~20세에 불과했다. 당시 15세였던 함씨는 “어리다고 입대가 거절되는 일이 많아 지원서에 나이를 1~2살 올려 적었다”고 회상했다.

 이날 서울고 동문회는 참전 동문 148명과 유족 15명, 재학생과 학부모 100여 명 등 총 8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비 제막식을 했다. 기념비 중앙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써서 보낸 ‘자유 민주주의 수호’ 문구를 새겼다. 이 학교 동문 김광규(69·한양대 명예교수) 시인은 여기에 헌시를 보냈다. 김 시인은 “우리가 너무 잊고 지낸 6·25와 그 희생을 이제는 기억할 때”라고 말했다.

글=심서현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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