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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 천성산 웅덩이엔도롱뇽·알 천지였습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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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호 01면

‘도롱뇽 소송’을 기억하십니까. 2003년 시작한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구간 원효터널 공사를 둘러싼 정부와 환경단체 간의 소송입니다.

‘도롱뇽 소송’ 천성산, 11월 1일 터널 개통 앞두고 가보니

천성산 내원사의 지율 스님과 환경단체가 터널 공사를 하면 산 정상 인근의 늪이 말라 생태계가 파괴된다며 ‘공사 착공 금지 가처분소송’을 냈습니다. 소송 때문에 터널 공사는 6개월간 중단됐습니다. 공사는 2006년 대법원이 소송 기각 및 각하 결정을 내린 뒤에야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경부고속철도 천성산 구간이 다음 달 1일 개통합니다. 중앙SUNDAY가 7~8일 생태 전문가와 함께 개통을 앞둔 천성산 원효터널 위에 있는 밀밭늪과 화엄늪의 생태계를 둘러봤습니다. 천성산 자락에 사는 주민도 만나 봤습니다. 화엄늪 관리자에게는 봄에는 웅덩이마다 도롱뇽과 알이 천지였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편집자>

검은색을 띤 천성산(해발 922m) 밀밭늪의 바닥은 물컹거렸다. 해발 700m 높이에 있었지만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흙에선 물이 배어 나왔다. 8일 오전 10시 찾은 밀밭늪은 곳곳에 억새가 자라 있었다. 허리를 숙여 가며 억새 사이의 습지 구석구석을 살폈다. 물이 5㎝ 정도 깊이로 고인 곳에서 손톱보다 작은 주걱 모양의 꽃 같은 것이 보였다. 동행한 생태 전문가 강상준(70) 충북대 명예교수가 습지에서만 자라는 ‘끈끈이주걱’이라고 했다. 습지식물인 ‘삿갓사초’, 습지와 건조한 땅 중간 단계에서 사는 식물인 ‘진퍼리새’ 등이 눈에 들어왔다. 강 교수는 “만약 물이 없으면 끈끈이주걱 같은 식물은 절대 살 수 없어요. 습지가 유지되고 있다는 증거죠”라며 “2004년이나 2008년이나 지금이나 똑같네요. 달라진 게 없어요”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2004년 가을부터 2008년 가을까지 11차례 천성산의 밀밭늪과 법수원계곡에 왔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의 의뢰를 받아 경부고속철도 대구~부산 구간 공사를 위해 천성산에 터널을 뚫을 경우 천성산 습지에 어떤 환경 변화가 생기는지 조사하기 위해서다. 강 교수는 각 분야 환경 전문가(식물, 식생, 조류·포유류, 양서·파충류, 육상곤충, 저서성 대형 무척추동물, 수문환경)들이 모인 조사팀의 총책임자였다. 천성산 여러 습지 중에 밀밭늪을 조사한 이유를 묻자 “밀밭늪이 터널 공사현장과 가장 가까워요. 만약 터널 공사 때문에 물이 밑으로 빠져 천성산 습지 환경에 문제가 생긴다면 밀밭늪이 가장 피해가 클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고 말했다.

‘졸졸졸’ 소리를 내며 물이 흐르는 도랑이 나타났다. 그곳에서 가재와 개구리를 볼 수 있었다. 환경조사에 양서·파충류 책임자로 참가했던 한국양서·파충류생태연구소 심재한(49) 소장을 13일 만나 현장에서 찍은 가재 사진을 보여 줬다. 그는 “이 가재는 1~2년 된 거예요. 이런 가재가 있다는 것은 여기에 항상 물이 존재한다는 걸 의미해요. 가재가 번식하고 있는 거죠. 가재는 물 없이 절대 살 수 없거든요”라며 “매년(2004~2008년) 조사하러 갈 때마다 도롱뇽을 발견했어요. 특히 봄에는 도롱뇽 알도 볼 수 있었고요. 지금 정도면 산은 겨울이에요. 날씨가 추워 도롱뇽은 벌써 겨울잠 자러 들어갔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밀밭늪에는 걸음을 걷기 힘들 정도로 억새가 많이 자라 있었다. 동행자가 1m 옆으로만 비켜서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다. 걸을 때는 양손으로 억새를 헤쳐야만 했다.

강 교수가 건조한 땅에서 자라는 억새가 많은 이유를 설명했다. “밀밭늪에 억새가 이렇게 많이 있다는 것은 이곳이 점점 건조해지고 있다는 증거죠. 그건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진행되고 있었어요. 제가 처음 여기 왔던 2004년에도 똑같았고요. 저기 보이는 화살나무·쥐똥나무 역시 주로 건조한 곳에서 자라는 나무인데 크기를 보세요. 최소한 15~20살은 되죠”라고 말했다.

“이곳 흙은 식물 잘 썩지 않는 이탄층, 습지 유지 잘 된다는 증거”

취재팀은 강상준 교수, 양산시청 환경관리과 김조은씨와 함께 8일 오전 9시 양산시내를 출발해 10시 천성산 밀밭늪에 도착했다. 밀밭늪으로 가는 길은 여러 곳이 있는데 차로 가려면 영산대학교 양산캠퍼스를 통해야 한다고 했다. 캠퍼스를 가로질러 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들어서자 갑자기 경사가 높아졌다. 4륜구동 차가 아니면 올라가기 힘들다고 했다. 차 한 대만으로 길이 꽉 차는 도로는 콘크리트 포장이 됐지만 군데군데 구멍이 나거나 길이 파여 있었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20여 분간 오르자 콘크리트로 포장된 도로가 끝났다. 흙으로 된 길이 시작되면서 차가 심하게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길을 안내해 주던 차량 내비게이션의 화면도 더 이상 길을 표시하지 않고 온통 녹색으로 변했다.

천성산 능선을 따라 산길을 시속 10㎞로 달렸다. 길 왼편은 가파른 경사였다. 저 멀리 울산시가 보이고 바로 밑에는 조금 전 지나왔던 경남 양산시 주남동과 영산대학 캠퍼스가 보였다. 10여 마리의 까마귀와 까치가 차 위로 날아가기도 하고 잠시 후엔 다람쥐 두 마리가 재빠르게 길을 가로지르는 모습도 보였다.

계속해 산을 오르던 취재진은 오전 9시50분쯤 ‘밀밭늪 고산습지 보호안내’라고 쓰인 표지판을 발견했다. 일반인의 출입을 막으려는 듯 표지판 뒤로 길을 따라 나무울타리가 설치돼 있었다. 차에서 내린 일행은 강 교수의 안내에 따라 울타리를 넘어 산길로 들어섰다. 소나무·참나무 숲을 지나 10여 분 밑으로 걸어 내려가자 갈색 억새가 눈에 들어왔다. 밀밭늪이었다.

밀밭늪은 천성산 정상에서 동남쪽 아래 형성된 면적 2만5000㎡가량의 산지 습지다. 밀밭늪 바닥은 다양한 모습이었다. 딱딱하게 마르거나 발로 밟으면 흙에서 물이 배어 나오기도 하고 이미 흙 위로 물을 흥건히 머금고 있기도 했다. 강 교수는 늪이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과정을 설명했다.

“늪은 물이 있어야 만들어지고 유지돼요. 늪을 만드는 물은 빗물·지표수·지하수 세 가지죠. 여기 밀밭늪은 지표수에 의해 만들어진 늪이에요. 그런데 여긴 경사가 심해 비가 많이 오면 산 위에 있던 자갈이 여기까지 떠내려와요. 그것이 늪의 흙을 덮으면 땅이 물을 머금을 수 없게 되죠. 그러다 보면 점점 늪은 가물어 가는 거예요. 수십년 전부터 이 과정이 이뤄지고 있는 겁니다. 생태학적으로 결국 늪은 초원으로 변하게 돼 있어요. 이것을 ‘습성천이’라고 해요.”

강 교수가 손으로 검은 땅을 한 움큼 쥐고 비비면서 말했다. “이건 흙이 아니라 ‘이탄층’이에요. 이탄층이란 식물이 완전히 썩지 않은 상태로 쌓인 것이에요. 이것 보세요. 유기물이 만져지잖아요. 여긴 모두 이탄층으로 돼 있어요. 습지이기 때문이죠. 습지 환경이 잘 유지되고 있네요.”

2004년은 지율 스님을 비롯한 환경·종교단체와 한국철도시설공단이 터널공사로 인한 천성산 환경 파괴 여부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강 교수에게 국민의 관심이 모두 쏠려 있는 상황에 생태조사를 맡는 것이 부담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부담은 전혀 없었어요. 저는 과학자예요. 있는 그대로 관찰해 객관적 데이터로 보여 주는 건데 무슨 부담이 돼요. 40년간 습지만 연구했습니다. 문제가 있었다면 내가 왜 발견하지 못했겠어요”라며 “이제는 어떤 공사든 환경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진행할 수 없어요.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 문제를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투자하는 비용이 너무 적어요. 소모적인 논쟁만 계속하죠. 환경운동이란 무조건 개발을 막는 게 아니에요.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진짜 환경운동이에요”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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