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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간송미술관 가을전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88호 02면

작품은 실제로 보아야 합니다. 사진인쇄 기술이 아무리 발달하고, 3D 입체 화면이 진짜처럼 생생하다고는 하지만, 제 눈으로 직접 보는 것에는 비길 수 없습니다. 몇 년 전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신윤복의 ‘미인도’였습니다. 이미 학교 다닐 때 미술교과서에서 숱하게 보았던 작품이었죠. ‘무슨 관람객이 이렇게 많나’라는 짜증이 끓고 있는 보리차 주전자 거품처럼 확 뚜껑을 열고 나오려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눈앞에 서 있는 그림 속 여인을 보고 정말 모골이 송연했습니다. 한 올 한 올 새겨낸 듯한 머릿결, 수줍은 듯 도발적인 미소, 살짝 몸을 뒤튼 듯한 교태가 그림 밖으로 철철 흘러나왔습니다. 그 짜릿한 경험에 대한 추억이 매년 간송미술관을 찾게 합니다. 5월과 10월 일 년에 두 차례 각각 보름씩 문 여는 기간에만 볼 수 있는 ‘불편함’에도, 엄청나게 긴 줄을 서는 무료함도 다 감내하고 말이죠.

올해 간송미술관 가을 전시가 오늘부터 31일까지 열립니다. 이번엔 꽃과 풀, 새와 짐승 그림 100여 점을 모았습니다. 고려 공민왕의 얼룩 양 그림부터 이당 김은호 화백의 참새 그림까지, 고르고 추린 소장품 동식물 그림들입니다. 화원화가 변상벽의 별명이 왜 ‘변 고양이’인지, 들쥐와 고양이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겸재 정선의 관찰력은 어땠는지, 단원 김홍도는 강아지를 바라보는 어미 개의 표정을 어떻게 그렸는지 직접 살펴볼 수 있는 자리입니다.

보화각 문이 열리는 오늘, 성북동 가을 나들이는 어떠신지요. 우리 고미술에 대해 개안(開眼)하는 행운을 누리실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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