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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자 야마오리 이어령 전 장관 대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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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독도 영유권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과 일본의 석학이 25일 한 자리에 앉았다.

이어령(71.사진(右)) 전 문화부 장관과 세계적인 종교학자 야마오리 데쓰오(山折哲雄.74.(左))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소장은 이날 서울 성균관대에서 '환경.종교 그리고 문화충돌-화해와 공존을 위한 탐색'이란 주제로 대담했다. 대담은 당초 예정됐던 2시간을 훌쩍 넘겼다.

야마오리 소장은 "9.11 테러와 이라크 전쟁을 보면서 오늘날 종교의 역할이 끝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문명 충돌을 방지하려면 종교의 기능을 다시 찾아주어야 한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 전 장관은 "종교는 문(文)에 포함된다. 결국 평화는 과거 한국과 일본이 공유했던 유교문화의 특징인 문민 중심의 통치가 회복될 때 가능할 것"이라고 받았다. 두 노학자가 평화의 문제를 풀어가는 해법에서 의견의 일치를 보인 것이다.

야마오리 소장은 이어 "전쟁과 혁명에 대한 연구는 많지만 평화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다"며 "세계의 많은 학자들은 조선 왕조 500년 동안에 평화가 유지된 배경에 대해 궁금해한다"고 물음을 던졌다. 이 전 장관은 "조선 왕조는 겉으로는 배불(排佛)정책을 펴면서도 사찰을 짓는 등 불교를 문화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갈등하지 않는 종교에 뿌리를 둔 통치 이념이 500년의 평화를 이끈 것"이라고 답했다.

야마오리 소장은 "재일교포 작가 유미리의 소설('8월의 저편')을 보면 '한(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한일 양국의 불교에는 정화의식이란 게 있다. 바로 한을 풀어주는 의식이다. 종교란 그런 것이다. 한을 풀어내는 의식, 그것이 화해와 공존으로 가는 길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한.일 양국은 환경 문제에서도 공존해야 할 운명 공동체"라고 강조했다. 이 전 장관도 "서양은 배타적 문화권이지만 한.중.일 등 아시아는 융합적 문화권"이라며 "종교의 뿌리와 문화적 배경이 비슷한 한국과 일본이 아시아권의 평화 공존에 노력하는 일이 곧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일"이라고 화답했다.

글=정강현 기자<foneo@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choij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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