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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게 듣는다] 제러미 리프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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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공감의 시대
제러미 리프킨 지음
이경남 옮김, 민음사
840쪽, 3만3000원

『노동의 종말』(2000), 『유러피안 드림』(2004) 등 저술로 이미 국내에도 적지 않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제러미 리프킨(펜실베이니아대 워튼경영대학원 교수). 또 다시 주목할만한 신간 『공감의 시대』를 펴냈다. 미국에서도 올 초 출간돼 화제가 됐다. ‘공감’이라는, 누구도 쉽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적인 키워드로 그는 인류사를 다시 보고자 한다. 적자생존과 부의 집중을 초래한 무한경쟁의 패러다임은 이제 끝났다는 선언이다. 그의 기존 저술을 종합하는 성격을 갖는 책이다.

  리프킨과 e-메일 인터뷰를 했다. 이 시대 ‘공감’의 화두를 던지는 이유, 지구촌 위기의 진정한 본질, 한국이 나아갈 길 등에 대한 힌트를 찾아보려는 시도다. 허심탄회한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예상대로 그의 저술인생 30년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공감을 내세웠다. 한국과 유럽연합(EU)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에 서명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양쪽 모두에 있어서 매우 중대한 기회”라는 대답도 들을 수 있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당신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공감’인데, 어떤 계기로 구상했나.

경제학자·사회사상가·미래학자의 역할을 동시에 해내고 있는 제러미 리프킨. [민음사 제공]

 “지난 30년간 저술을 해오면서 공감의 중요성을 통감해왔다. 근대 200년 르네 데카르트와 아이작 뉴턴같은 철학자·과학자들은 인간이 이익을 좇고 경쟁을 추구하는 본성을 가졌다고 말해왔다. 이런 시각이 정부·기업·사회에 스며들었다. 흥미롭게도 최근 생물학자들은 이를 뒤엎는 발견을 했다. 인간에는 ‘공감 뉴런(신경세포)’이 있다는 것인데, 여기에서 착안했다. 지금 인류는 티핑 포인트, 즉 전환점에 서있다. 기후변화 등 인류 삶의 조건 자체가 한계에 도달했음을 인정하고 인간 본성을 재고해야 한다. 하지만 공감이 있다면 희망이 있다.”

-이전에 펴낸 『엔트로피』 『노동의 종말』 『수소혁명』 『유러피언 드림』 등과 신간 『공감의 시대』를 관통하는 동기는 무엇인가.

“인생이란 유한하며, 그렇기 때문에 더욱 소중히 다뤄져야 한다는 역설이다. 인간 고유의 가치를 존중할 뿐 아니라 지구상 모든 존재의 지속가능한 삶을 꾸려갈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 세계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위기, 지구온난화 같은 지구 환경의 위기가 더 근원적이라고 보는 듯한데.

“진정한 세계의 위기는 석유 등 화석연료 문제다. 이런 시스템은 개도국에 더 위험하다. 이것이 경제 지진(economic earthquake)이며, 2008년 7월 이후 비롯된 경제위기는 여진(aftershock)이다. 화석연료의 게임은 막판(end game)에 다다랐다. 새 판을 짤 때다. 우린 화석연료의 마지막 10년을 살고 있다.”

-‘발전소형 빌딩’ 건축과 개인이 자가 발전소를 갖추고 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이 가난한 나라에서도 현실이 될 수 있나.

“가능하다. 유럽 및 다른 지역에서 이미 일어나는 일이다. 유럽연합(EU)의회에서 승인해 추진 중인 프로젝트에 내가 참여할 기회가 있었는데, 관련 시설이 곳곳에 세워지고 있다. 2020년까지 유럽에서 필요한 에너지의 1/3을 생산하는 것, 그리고 일정 기간 내에 100여개의 빌딩이 미니 발전소로 바뀔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초기 비용이 들겠지만 단가가 낮아질 것이다. 개도국에도 효과적 모델이다.”

-북핵 문제가 국제 정치 난제로 남아 있는데도, 국제에너지기구(IEA)가 핵발전소 건설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IEA는 핵에너지를 오해하고 있다. 21세기엔 핵에너지가 큰 역할을 못 한다. 첫째, 400여개의 핵발전소가 전세계 곳곳에 있으나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려면 에너지 양의 20%를 담당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에 못 미친다. 둘째로 사용후 연료의 처리 문제다. 셋째 원료인 우라늄 등의 가격이 올라가고 있다.”

- 오래 전부터 수소 에너지 체계로 이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걸 잘 이용하는 나라는?

“EU의 경우를 참고하면 된다.”

-‘에너지 주권’ 시대는 언제쯤 도래할 것으로 예상하는가?

 “EU의 경우를 보면 이미 조금씩 그 시대가 시작되는 조짐이 보인다. 모나코의 알버트 왕자 등도 관심이 지대하다. 한국도 이 분야에서 인상적이다.”

-한국에선 ‘아메리칸 드림’과 ‘유러피언 드림’의 가치가 공존하면서 상충하고 있다. ‘유러피언 드림’을 지향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나는 아메리칸 드림을 갖고 자라났다. 개인의 물질적 성공이 목표인데, 그건 19세기와 20세기에 통했던 가치다. 21세기는 삶의 질을 중시한다. 인터넷으로 세계와 연결되어 있으며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지식을 나누고 삶을 나눈다. 공동체가 행복해야 삶의 질이 보장된다는 얘기다. 인류가 지구 행성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선 공동체의 행복, 공감이 중요하다.”

-한국과 EU 간 FTA가 정부 차원의 서명을 마쳤다.

“이는 한국과 EU 모두에 있어서 매우 중대한 기회다. EU는 대륙을 기반으로 하는 최초의 경제 시스템이며 한국은 중국·브라질 등과 함께 고속 성장의 모델이다. 이 둘이 만나면 그 시너지는 대단할 것이며 둘 다 화석연료 이후 사회에 있어서 큰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책에서 언급한, 공감에 기초한 분산 자본주의는 지금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다고 보는가?

 “매우 초기 단계다. EU가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고 지난 1년간 세계 다른 곳에서도 움직임이 있었다. 관련 회의가 열렸고, 학자와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댔다. 이제 정부와 시민사회가 움직일 때다.”

배영대·전수진 기자



3차 산업혁명 곧 온다
웅대한 통섭, 빅 스토리

한동안 뜸하던 제러미 리프킨이 다시 ‘사고’ 쳤다. 신간 『공감의 시대』는 히트작 『노동의 종말』 『수소 혁명』 『유러피안 드림』에 이은 저술인데, 첫 느낌은 그동안 펴냈던 저술의 종합이다. 단순 취합일 리는 없다. 인류사를 새로 쓴다.

저자 스스로 “지금까지 인류의 진화와 역사에 대한 이야기는 재검토돼야 한다”고 감히 선언하는데, 스스로 문명사에 도전했다. 비견하자면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인데, 정보화 혁명은 기본이다. 리프킨은 새 문명의 여명인 3차 산업혁명을 예고한다.

 근대 초기 1차 산업혁명과, 20세기 2차 산업혁명의 패러다임이 끝났다는 메시지다. 문제는 에너지·커뮤니케이션 변화가 인간본성까지 바꾼다. 변화의 핵심이 공감(empathy)이다. 공감은 스케일이 크다. 타인에 대한 배려, 동물과의 교감, 우리 삶의 절대적 조건인 생물권(biosphere) 인식이라는 3박자를 갖춰야 완성된다. 가이아 이론을 연상하지만 또 다르다. 그가 지향하는 건 깊은 역사(deep history)다. 진화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만든 이 용어는 요즘 역사학의 화두인데, 연대기적 정보의 ‘얕은 역사학’과 구분된다.

 즉 웅대한 통섭(統攝)을 통한 빅 스토리라서 생물학적으로 하나의 종(種)인 인간사는 물론 동식물과 해저·대기권 60㎞ 그리고 지구를 끌어안는다. 다루는 시간은 수십 만 년, 수 억 년일 수 있다. B급 책 10권 보느니 밤 새워 씨름해볼만한 게 『공감의 시대』다.

또 다른 각도의 ‘종합사’인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의 『콜로서스』, 생물학자 매트 리들리의 『이성적 낙관주의자』와 비교해도 좋을 듯싶다.

조우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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