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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풍의 드라마 ‘대물’서 첫 여성 대통령 변신 고현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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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여배우의 활동 기회가 많아진 게 기쁘다”는 ‘대물’의 고현정. 애교 넘치게 한마디 했다. “지금 어린 연기자들! 언니들에게 고마워하고, 내 프로그램 본방사수 해라~(본방송 놓치지 마라).”

지난해 ‘선덕여왕’의 미실 역으로 여자 마키아벨리에 비유됐던 고현정(39). 이번엔 억척스런 아줌마로 변신해 또 한번 ‘제왕’의 꿈을 펼친다. 고현정이 현대사 첫 여자대통령 서혜림으로 변신한 SBS ‘대물’은 방송 2회 만에 동시간대 시청률 1위로 올라섰다. 3회는 26.4%(AGB닐슨미디어리서치, 전국기준)를 기록했다. 정치권 반응도 민감하다. 11일 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선 하도야(권상우) 부친의 ‘국회의원 구두 핥기’(1회)에 대한 문제제기가 나왔다. 잠수함 침몰, 대통령 탄핵, 의원 비리 등이 이어지자 여야 정치권도 신경쓰는 눈치다. 특정 정당·정치인을 연상시킨다는 말에 각 당에서 화제로 언급됐을 정도다.

14일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는 경기도 가평 북한강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서혜림의 유세 장면 촬영이다. 단정한 정장의 고현정이 나타나자 주민들이 “실제가 더 곱네” “아유, 잘 보고 있어”라고 말을 건넸다. 촬영장에서 좀처럼 틈을 내주지 않는 그녀에게 어렵사리 ‘대물’을 물었다.

- 시청률이 파죽지세다. 인기를 실감하나.

“사실 미실 땐 계속 산속으로 다녀서 잘 몰랐다. 이번엔 식당 가면 어르신, 학생들이 알아보고 격려해줘서 반응을 알겠다. 또다시 센 역할이 부담스러웠는데, ‘이 정도 사이즈를 할 사람이 너밖에 없다’기에 맡았다.”

-남편 피살에 오열하고, 정부 조치에 항의하는 장면에서 울컥했다는 이들이 많더라. (※아나운서 서혜림은 남편이 아프가니스탄에 출장 갔다 피살당한 것을 계기로 정치권의 손짓을 받게 된다)

“대미외교에서 눈치 보는 부분 같은 것도 진작 다뤄졌어야 할 문제니까. 연설 중에도 시원한 말들이 있다. 하지만 이건 다큐도 아니고, 정치드라마도 아니다. 서혜림은 살면서 의도하지 않은 대로 인생이 꼬여버린 전형적인 인물이다. 정치엔 관심도 없던 인물이 그렇게 나아갈 수밖에 없는 과정을 그릴 뿐이다.”

-정치권에서 말들이 많다.

“(다소 어이없다는 듯) 왜 그러시는지? 이건 허구의 드라마다. 사실 진짜 아픔을 지닌 분들을 생각하면 이렇게 겉핥기로 다뤄도 되나 그게 걱정인데. 정치권에 물론 훌륭한 분들이 많을 것이고 그 현실은 온 국민이 느끼고 산다. 다만 미흡했던 부분을 허구를 빌어 말하는 거 아닌가. TV를 통해서나마 속 시원히 울 수도 있고 웃을 수도 있게.”

- 서혜림에 빗대지는 여성 정치인이 많다.

“(살짝 미소) 나를 현실 정치인과 겹쳐 생각한다면 연기가 부족한 것이겠지. 더 잘해서 누군지 모르게끔, 골치는 아파도 저런 인물이 현실에도 있었으면 좋겠다 했으면 한다. 서혜림이 이 신분, 저 신분 옮겨 다니면서 사회 이곳저곳을 풍자하는 것에 주목해달라.”

- 혹시 정치할 생각 있나.

“(고개까지 돌리며 헛웃음) 전~혀. 사람들 앞에 서는 것 별로 안 좋아한다. 정치란 게 드라마와는 또 다른 문제일 것 같다. 자리가 갖는 어려움, 책임감, 하고 싶은 말도 못 하는 상황 무수할 것이다.”

-여자 대통령의 강점이 있다고 보나

“서혜림이 여성이란 것 뿐 남녀 가르는 얘기는 아닌 것 같다. 남자라고 정치 잘하나. 서혜림의 삶이 여성 시청자들에게 더 다가갔을 순 있겠다.”

-미실과 비교하면 어떤가. 어느 쪽이 자신에 더 가깝나.

“서혜림은 좌충우돌하며 자신의 경험을 믿는 인물이다. 미실만큼 세련된 야심가이거나 전략적이지 않다. 나는 서혜림 쪽에 가까운 것 같다. 하지만 미실, 지금 생각해도 괜찮은 여자다. 미실에 대한 열광은 ‘나를 믿고 따르라’ 하는 지도자에 대한 갈증이었던 것 같다. 그에 비해 서혜림은 ‘이건 아니지 않나’ 하고 계속 문제제기 하는 사람이다. 고현정이 그리는 서혜림이라는 대통령이 시청자들에게 위로가 되는 인물이었으면 한다.”

-남다른 ‘포스’의 비결이 뭔가

“포스라… 주로 욱할 때 나오는데, 초년병 시절부터 그랬다(웃음). 돌아보면 그때도 현장에 무서운 어른이 계셔서 분위기를 딱 잡고 넘어가는 게 좋아 보였다. 자신감이 있어야 가능하니까. 그런데 연기자로서 ‘포스 이미지’로 굳어지는 건 안 좋은 것 같다.”

- 서혜림은 상대적으로 서민적인 푼수기도 있어 보인다.

“서민들이 푼수 짓 하는 건 그때그때 살아야 하니까 하는 수 없이 해야 할 때가 있다. 드라마가 엑기스를 담아야 하니까 코믹하게 엮어가는 게 있는데, 그런 장면 보면 나는 슬프다. 진짜 푼수는 몸 안 쓰고 머리만 쓰려는 이들 아닐까.”

-이제 국민배우로 다가서는 건가

“(갸우뚱해 하며) 국민 배우, 별로 안되고 싶은데. 그러면 뭉툭해져야 할 것 같아서 싫다. 난 치열한 연기자 로 남고 싶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제작진의 휴대전화가 쉴새 없이 울렸다. 4회까지 썼던 황은경 작가에서 유동윤 작가로 교체된 걸 두고 인터넷에서 “정치권의 압력 때문 아니냐”라는 추측이 번졌기 때문. 실제론 방영 전에 이미 작가 교체가 결정된 상황이다. 오종록 PD는 “거참 터무니 없는 소리. 요새가 그런 세상인가”라며 웃었다. ‘노이즈 마케팅’ 덕에 화제가 되는 게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가평=글·사진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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