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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중앙시평

북한을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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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그러나 이것은 맥락이 전혀 다른, 그야말로 생뚱맞은 비교다. 모르고 말했다면 순진한 발상이고 알고도 말했다면 비열한 짓이다. 진실을 오도하고 다른 사람들을 잘못 믿게 만든다면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황당한 비유적 표현을 진정한 실체로 받아들일 때 종북(從北)주의자가 된다. 북한은 한마디로 전제정(專制政)의 나라다. 그들의 만수대의사당은 우리의 국회의사당과 같을 수 없고, 그들의 3대 세습은 영국의 왕가와 같은 것이 아니다. 흔히 북한을 두고 ‘불량 국가’ 혹은 ‘실패한 국가’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본질은 어디까지나 전체주의 전제국가다. 1980년대 말 동유럽과 소련에서 공산주의가 망하면서 1인 절대지배, 일당독재, 관제 이데올로기, 혹독한 감시체제도 붕괴했고, 그 자리에는 억압의 흔적들로 얼룩진 전제정권의 지도 한 장을 달랑 남겨놓았을 뿐이다. 그러나 북한은 다르다. 전체주의의 망령과 같은 형태가 아직도 강력한 힘으로 존재하는 곳이 북한이다.

인간은 신 앞에서만 무릎을 꿇을 수 있지 같은 인간들 사이에서는 무릎을 꿇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민주국가의 확고한 규범이다. 그러나 인간이 인간에게 무릎을 꿇는 것처럼 사악한 불평등 관계가 존재할 때 ‘지배’라는 표현을 쓴다. 영어로 ‘지배’를 뜻하는 ‘domination’의 어원이 되는 라틴어의 ‘dominus’라는 단어는 한결같이 노예에 대해 자의적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노예주를 뜻했다. 전제정의 특징은 공적·사적 영역 할 것 없이 절대권력을 휘둘러 죽이고 싶으면 죽이고 감옥에 가두고 싶으면 가둘 수 있는 무소불위의 지배욕에 있다. 북한의 세습은 바로 이런 전제정의 본질적 특성에서 나온 것일 뿐, 미국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유권자들의 뜻에 따라 각각 대통령이 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던가. 김정은 후계체제를 공식화하기 위해 대거 외신기자들을 초청해 사상 처음으로 ‘은둔의 왕국’에서 생중계를 했다고 하여 민주사회에서 귀빈들의 축복 속에 열리는 대통령 취임식과 같은 의미의 정당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북한이 자신을 표현하는 용어 가운데 가장 해괴한 것이 ‘공화국’이라는 단어다. 북한은 과연 공화국인가. 공화국은 일찍이 로마의 키케로가 지적한 대로 ‘레즈 푸블리카(res publica)’다. 나라는 한 개인의 것이 아니라 공적인 것으로 국민 전체의 소유라는 의미다. 지금 북한은 누가 뭐래도 김일성 일가의 것인데도 ‘공화국’이라고 하니, 이처럼 지독한 언어의 타락을 어디서 찾아보겠는가.

유감스러운 것은 북한을 바라보는 우리 정치인들의 태도다. 민노당과 민주당의 일부 인사들은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 침묵을 지키거나 “북한에서는 상식”이라고 말할 정도로 북한을 두둔하는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종북주의자들의 문제는 과잉 민족주의에 빠져 한국과 북한, 혹은 공화정과 전제정 사이에 같지도 않은 것을 같다고 말하는 데 있다. 통치자가 있는 것은 똑같지만, 제한된 임기와 권력의 대통령이 국정을 책임지는 것과 죽을 때까지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국방위원장이 군림하는 것은 다르다. 지금은 북한을 보면서 민주국가와 다른 것이 무엇인가를 물을 때지, 같은 것이 있다고 강변할 때가 아니다.

고(故) 황장엽 선생은 김정일이 파티 때 자신은 물을 마시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억지로 술을 마시게 했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바로 그런 것이 전제정의 맨얼굴이다. 민노당과 민주당의 정치인들이여! 제발 종북주의자가 되지 말고 문명사회의 규범을 되새기며 국민을 오도(誤導)하기를 그치라.

박효종 서울대 교수·윤리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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