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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람] 영화 '피와 뼈'서 한국인 역할 기타노 다케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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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제주도 방언까지 해야 했던 게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일본 영화계의 거목인 기타노 다케시(北野武.58.사진)가 25일 국내 개봉하는 영화'피와 뼈'에서 1923년 제주도에서 일본 오사카로 건너간 한국인 '김준평'역을 맡았다. 재일동포 최양일 감독이 동포작가 양석일의 소설을 영화화한 '피와 뼈'는 일제시대 오사카에서 괴물처럼 살다간 김준평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그린 작품.

지난해 일본 키네마준보 영화상, 마이니치 영화콩쿠르, 올해 일본 아카데미상 등에서 작품.감독.연기상을 받았다.

기타노는 '피와 뼈'에서 한국어를 몇 마디 한다. '김치' '아프다' '이리와' '벗어' '에미야' 등 그의 한국어 대사는 많지는 않지만 영화의 현실감을 높인다.

그는 본지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재일 한국인 사회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자랐던 도쿄 아다치구에도 '작은 김준평'이 수두룩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돈과 섹스에 집착하며 주변에 폭군처럼 군림했던 김준평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서툴렀으나 그만큼 정직하고, 순수하게 살아간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기타노는 감독.배우를 겸하는 만능 엔터테이너다. 97년 '하나비'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대상인 황금사자상을 타며 '세계적 작가'로 인정받았던 그는 최 감독과 각별한 인연을 맺어왔다. 83년 최 감독의 데뷔작 '10층의 모기'에서 단역으로 깜짝 출연했고, 99년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고하토'에선 최 감독과 함께 연기를 하기도 했다. '피와 뼈'의 출연도 가공할 성격의 김준평을 소화할 사람은 그 밖에 없다는 최 감독의 요청에 따른 것. 그로서는 14년 만에 다른 감독의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최 감독의 타협 없는 집요함은 정말 대단했어요. 내 어깨가 탈골됐을 때도 '조심하셔야죠, 자 그럼 다시 한번' 하는 겁니다. 그의 영화 '퀼'에 나오는 맹인견보다 더 혹독하게 다뤘어요. 내가 개보다 못한가요?"

80년대 독설 넘치는 코미디로 유명했던 그의 면모가 느껴진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 처음으로 배우다운 배우를 한 것 같다"고 즐거워 했다. "드디어 영화의 신이 내리셨네요"라는 극찬도 들었다는 것. 그의 아내도 영화를 보며 "당신 그대로네"라고 했다고 한다.

"체중도 5㎏ 불리고, 체육관에서 3개월간 훈련하며 근육을 키웠어요. 연기자로서의 한계를 시험해본, 나 자신과의 승부였습니다. 내가 연출한 작품에선 '이 정도면 됐어, 편집으로 때우지'하고 OK 사인을 내기도 했거든요."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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