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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한국에서 노벨 과학상 왜 안 나오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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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휘거나 늘어나도 부러지지 않고 전류가 흘러 ‘꿈의 물질’로 불리는 그래핀. 상업화를 위해서는 대량생산이 필요한데 국내 연구진이 이 점에서 세계 수준이라는 평가를 듣는다. 그러나 올해 노벨 물리학상은 그래핀을 처음 분리한 영국 맨체스터대학의 안드레 가임 교수와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교수가 받게 됐다.

세계 석학들은 한국이 과학기술 분야에서 짧은 시간에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는 점을 경이롭게 여긴다. 그럼에도 매년 노벨 과학상의 꿈은 수포로 돌아간다. 이웃 일본은 올해에도 두 명의 노벨 화학상 수상자를 추가해 일본 국적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는 14명이나 된다.

따라잡을 방법은 없을까. 우리 사회에 만연한 ‘따라하기’ 습성에 주목하고 싶다. 선진국의 아이디어나 상품을 빠르게 따라잡는 방식이 잘 통해왔다는 게 어쩌면 노벨 과학상에는 걸림돌이 됐을 수 있다. 글로벌 기업으로 큰 삼성전자·현대자동차·포스코 등 국내 업종 1위 기업의 제품 중에는 따라하기에 주력해 성공한 것이 많다. 한 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는 “남의 엉덩이만 쳐다보면서 산에 올랐는데 정상에는 나 혼자더라. 한동안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웠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해외 유학을 마치고 연구현장으로 돌아온 젊은 인재들의 연구과제 또한 유학 시절의 주제에서 벗어나면 곤란을 겪기 일쑤다. 국내 대학에 최근 자리 잡은 한 교수는 “생소한 분야의 연구계획서를 작성해 연구비를 요청했더니 근거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곧바로 반송됐다”고 말했다. 익숙한 주제, 논문이 금세 나올 만한 분야에 대학과 정부의 예산이 잘 배정되는 건 과학기술계의 불문율이다.

노벨 과학상은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에 도전한 사람들이 주인공이었다. 해마다 이 명단이 나오는 10월이 되면 색다른 생각, 튀는 인물이 환영받는 ‘열린 사회’가 아쉬워 마음이 스산해진다.

심재우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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