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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균 기자의 푸드&메드] 이 세상에 완벽한 안전 식품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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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낙지·문어 머리의 카드뮴 검사 결과를 발표한 지난달 13일은 관련 수산업엔 ‘블랙 먼데이’였다. 그후 식품의약품안전청이 반박 자료를 근거와 함께 제시했지만 지금도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사건은 식품안전 이슈는 소비자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며 그만큼 신중하게 다뤄져야 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요즘 웰빙식품으로 인기 높은 크랜베리도 미국에서 ‘블랙 먼데이’를 경험했다. 미국 보건부가 1959년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오리건과 워싱턴 주에서 생산된 크랜베리에 제초제(농약의 일종)인 아미노트리아졸이 들어 있다고 발표한 것이 발단이었다.

크랜베리의 매출이 추락하자 정부가 “먹어도 괜찮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소비자의 외면·불신은 오래 지속됐다. 식품에 잔류하는 화학물질이 대중에 공포심을 심어준 첫 사례로 간주된다.

클랜베리 파동의 전주곡은 1년 전인 1958년 제임스 델라니(뉴욕·민주당) 하원의원이 발표한 델라니 조항(Delaney clause)이었다. 기존의 ‘식품·의약품·화장품법’을 개정한 델라니 조항의 요체는 발암물질은 식품에 일절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무관용(zero tolerance)주의였다. 이에 따라 발암성이 의심된 농약·식품첨가물·동물용 의약품이 소량이라도 함유된 식품은 식용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델라니 조항은 당시 미국 소비자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선거 결과에도 일조했다. 안전한 식품을 보장해 주셌다는데 마다할 유권자가 없었다.

그러나 1988년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무시할 수 있는 위험(de minimis risk)’이란 신개념을 도입해 델라니 조항의 ‘벽’을 허물었다. 설령 발암물질이 들어 있어도 양이 극히 적어 건강에 해를 미치지 않는다면 사용을 허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델라니 의원이 활동하던 1950년대엔 각종 화학물질의 분석 한계가 ㎎(1000분의 1g)이나 ㎍(100만분의 1g) 수준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MS-GC 등 분석 장비의 발달로 ng(10억분의 1g), pg(1조분의 1g)까지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엔 ‘모르는 게 약’이었던 유해물질들이 백일하에 드러나 현대인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 것이다. 다이옥신이 좋은 예다. 다이옥신의 검출량은 수pg 수준이어서 과거엔 그런 물질이 존재하는지도 몰랐다.

델라니 조항이 용도폐기되면서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위해도 평가(risk assessment)다. 이 평가의 핵심 내용은 기본적으로 모든 식품엔 발암물질·중금속·식품첨가물·잔류농약 등 소비자들이 우려하는 화학물질이 들어 있다는 전제하고 시작한다. 그래도 먹어도 되는지 득(혜택)과 실(위험)을 따져보자는 것이 다. 낙지머리 파동에서 식약청이 안전하다는 근거로 제시한 것이 위해도 평가 결과다.

어떤 식품이든 절대선과 절대악은 없다. 김치를 항암식품으로만 여기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니트로소아민 등 발암물질이 극소량 들어 있을 수 있다. 또한 사과는 ‘이걸 먹고 아픈 사람이 줄어 환자가 없어지면 어쩌나’ 의사가 걱정할 만큼 몸에 좋은 과일이지만 아스피린 원료인 살리실산, 소독성분인 아세톤·이소프로판올이 함유돼 있다. 우리가 김치·사과를 먹는 것은 손익계산에서 이익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문제는 카드뮴 등 유해 화학물질의 존재 유무가 아니라 얼마나 들어 있느냐다. ‘독성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스위스의 의사 필리푸스 파라셀수스는 이미 500여 년 전에 ‘독은 곧 양(Dose is poison)’이라고 했다. 세상에 독이 없는 것은 없으며 얼마나 많이 먹느냐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물도 극단적으로 과량 섭취하면 독이 된다. 소비자의 식품안전에 대한 인식도 ‘정성’(유해물질이 있는지 없는지)에서 ‘정량’(얼마나 들어 있는지)으로 업그레이드될 때가 됐다.

박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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