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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살마을 운동 ⑧ 아이의 폭력성, 부모에게 배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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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TV에서 나이가 지긋한 배우가 “맞고 자란 아이가 효도한다”는 말을 했다. 너무 “오냐 오냐” 하는 요즘의 양육이 버릇없는 아이를 만든다는 말에 진행자들까지 동조했다. 수세기 동안 사람들은 엄격한 처벌을 하는 양육이 아이의 도덕성을 가르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심리학과 신경생물학 연구를 통해 이 같은 가설이 완전히 틀렸다는 사실이 밝혀진 지 오래됐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아직 변하지 않고 있다. 중앙일보는 ‘세살마을’ 운동의 일환으로 미래 국가 동량이 될 아이들의 태아부터 출산·육아·교육에 이르기까지 부모와 사회가 인지해야 할 보살핌의 지혜를 연재한다. 이번 주제는 ‘아이의 폭력성, 부모에게 배운다’로 정했다.

잦은 체벌 받은 아이, 더 약한 아이에게 폭력

아이의 공격성은 정상 발달의 일부분이다. 이 에너지를 건설적으로 이끄는 것은 부모의 몫이다. [중앙포토]

놀이를 보면 난폭하고 폭력적인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가 확연히 구분된다. 캐나다·뉴질랜드·미국의 소년 1000여 명을 조사한 결과 유아기 때 높은 공격성을 보인 아이는 커서도 폭력성이 지속된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가 폭군이나 싸움꾼으로 자라는 것은 대체로 부모의 육아 방식에 영향을 받는다. 부모들은 아이를 가르치겠다는 생각으로 고함을 치고 잔소리를 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아이의 뇌는 스트레스 반응체계가 예민해진다. 또 복종과 지배를 체득하고, 부모에게 폭력을 당한 대로 다른 아이들이나 약자를 괴롭힌다.

아이는 부모가 화내고, 소리치며 매를 들면 지적받은 행위를 멈춘다. 하지만 잘못된 행동의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강제로 제압당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부모의 폭력성을 익힌다.

미국에서 실시한 부모 행동에 대한 연구를 보면 부모들 중 75%가 한 살짜리 아이를 때린다고 했다. 또 아이들의 91%는 매를 맞고, 이 중 10%는 도구로 맞는다고 했다.

이런 체벌은 아이에게 ‘때려도 된다’는 메시지를 준다. 부모가 직접 행동으로 아이를 가르치는 셈이다. 아이는 부모 몰래 동생을 때리고, 고양이나 강아지를 발로 차며, 다른 아이들을 괴롭힌다. 화가 나면 폭력을 써도 괜찮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미국 듀크대 케네스 다지 교수의 연구 결과에도 잘 나타난다. 엉덩이를 맞는 체벌을 당한 아이일수록 더 공격적으로 변했다. 특히 체벌할 때 부모의 감정적인 태도와 반응이 아이의 공격성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때리고 맞는 행위’보다 아이를 무시하거나 적대적으로 대하는 부모의 태도가 더 문제가 된다.

부모의 잔소리, 반성 모르는 뇌 만들어

아이를 키우면서 잔소리나 고함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이런 큰소리와 화난 음성, 행동이 부모와 아이 간 상호작용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면 큰 문제다.

이때 아이는 인간관계가 힘과 통제로 움직인다고 인식한다. 아이는 배려와 협력·친절함에 대해 모르고 성장한다. 잦은 야단과 체벌을 겪은 아이는 엄청난 긴장이 쌓여 터지기 일보직전의 화산처럼 된다.

성인들은 누군가에게 잔소리를 들으면 스트레스를 음주·수다·흡연 등으로 푼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른 아이를 때리고 괴롭히며, 소리를 지르며 푼다. 자기 머리를 벽에 찧거나 남을 물어뜯고 물건을 던지기도 한다. 성장해선 전쟁놀이에 몰두하거나 폭력적인 컴퓨터 게임에 빠진다.

캐나다의 정신과 의사인 앨리슨 셔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부모가 아이의 이런 행동을 바로잡고자 또다시 잔소리와 위협을 일삼고 체벌을 하면, 아이의 뇌는 차분히 생각하고 계획하며 반성할 줄 모르게 발달한다. 뇌의 스트레스 반응체계와 하위 뇌의 분노체계가 정지해버리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장기간 노출되며 큰 아이는 작은 일에도 쉽게 화를 낸다. 일명 파충류 뇌 상태로 발달이 멈춘다. 이 뇌는 어떤 자극이 오면 싸우기 아니면 도망치기밖에 모른다. 성인이 된 뒤 사회생활도 어렵다.

아이들의 뇌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반사회적인 행동을 한다. 스트레스는 호르몬 변화를 일으켜 아이가 멋대로 착각한 악의적인 세상과 싸우도록 뇌를 영원히 세뇌시킨다. 미국 하버드대 타이커(Teicher) 교수는 이런 연쇄반응이 결국 폭력의 대물림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아이에게 스트레스 주지 않고 타이르려면

● 아이와 말싸움하지 않기

● 잘한 행동은 크게 칭찬하기

● 분명한 상벌 규칙 정하기

● 아이가 잘못했을 때 흥분하지 말고 차분히 말하기

● 아이가 관심을 끌기 위해 하는 행동은 무시

●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게 단순하게 말하기

※자료: 영국 아동심리치료사 마고 선덜랜드


다퉜어도 화해하는 부모 보면 안정감 느껴

미국 노터데임대 마크 커밍스 박사는 아이들을 집안의 감정적인 측정기라고 표현했다. 그는 아이들의 정서적 편안함과 안정이 부모와 자식 간의 직접적인 관계보다 부모들의 부부관계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부부간에 다툼이 아예 없이 살아갈 순 없다. 하지만 다투더라도 다시 화해하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면 부부가 친밀할 때와 같은 안정감을 느낀다고 한다. 부부 사이가 나쁘고, 어른들 간의 갈등이 큰 상황인데도 모른 척하고 아이와만 잘 지내려고 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아이에게 나타나는 어느 정도의 공격성은 정상 발달 중의 일부분이다. 아이들은 두 살부터 네 살까지는 폭력적인 면과 건설적인 면이 혼재된 공격성이 동시에 나타난다.

이 공격성을 스스로 잘 조절할 수 있다면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에너지로 쓸 수 있다. 이런 전환에 바로 부모의 역할이 있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과 행동을 배우고, 그것을 방향 삼아 앞으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무언가 호기심을 갖고 자꾸 시도하려고 할 때 아이는 당황스러운 좌절을 겪기도 한다. 부모는 이때 아이가 좌절의 감정과 흥분을 조절하지 못해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도록 필요한 규칙과 경계를 세워 안전한 링 같은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아이가 그 안에서 타인을 존중하며, 자신을 스스로 통제하고 조절하는 법을 배우도록 가르쳐야 한다.

배승민 가천의대 길병원 소아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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