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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이민 100년] 上.<메인> 한인의 멕시칸 드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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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올해로 멕시코 이민 100주년을 맞는다. 1033명의 한인이 인천 제물포항을 떠난 게 1905년 4월 4일.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 도착(5월 12일)한 이들 한인의 후손은 100년이 흐른 이제 3만여명을 헤아린다. 한인의 멕시코 첫 정착지인 이 유카탄 메리다에서는 21일부터 일주일간 멕시코 한인 이민 100주년을 기념하는 '에네켄 축제'가 열린다. 3회에 걸쳐 한인의 멕시코 이민 100년을 살펴본다.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최대 도시 메리다에서 차로 한 시간 남짓 달리자 에네켄(선인장의 일종) 농장이 나온다. 정문을 들어서니 투우 경기장을 연상케 하는 운동장이 보인다. 그 뒤엔 스페인풍의 고색창연한 저택과 큰 굴뚝의 대형 건물이 버티고 있다. 중세 유럽의 유적지 같다. 바로 여기가 한인 1033명을 실은 영국 국적의 화물선 일포도호가 도착한 곳이다. 노동계약이 끝나는 4년 뒤엔 금의환향하리라며 멕시코를 향했던 한인의 '묵서가(墨西哥, 멕시코의 한문 표기) 드림'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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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시코에 팔린 근면과 성실=20세기 초 유카탄 반도의 에네켄 농장은 전성기를 맞았다. 에네켄에서 뽑은 섬유를 원료로 한 선박용 로프의 수요가 당시 해운산업 번창과 더불어 폭증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에네켄 농장주 협회는 영국인 존 마이어스를 앞세워 한인 노동자 유치를 추진했다. 한인의 근면과 성실을 평가한 것이다. 이태 전 시작된 미국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이민에서 한인의 우수성이 알려진 까닭이었다. 중국이 현지의 열악한 상황을 알고선 중국인의 추가 이민을 금지한 것도 한인의 필요성을 한층 높였다.

◆ 신한국 프로젝트와 모험심=그동안 멕시코의 한인 진출은 주로 '사기 이민' 측면에서 조명됐다. 일본 인력송출회사 광고에 거짓이 많았기 때문이다. "묵서가는 극락 같은 곳이다" "누구든 병들면 고쳐준다" 등 허황된 내용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멕시코 이민 100주년 사업회 사무총장직을 맡고 있는 조남환 목사는 긍정적 측면을 부각한다. 그는 "1905년 우리 정부가 멕시코에서 일할 수 있도록 허락을 겸한 여권을 이민자에게 발급했고 한인을 맞은 기관도 멕시코 이민청"이라며 정식 노동 이민으로 보는 게 옳다는 것이다.

조 목사는 특히 이민에 합류한 조선 왕족 출신 이종오(李鐘旿) 선생의 경우를 지적한다. 그는 건장한 체구의 내시 4명, 궁녀 1명과 함께 왔다. 고종은 멕시코 이민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해외 망명정부 건설과 같은 '신한국 프로젝트' 임무를 이 선생에게 부여했을 것이란 이야기다.

한인의 멕시코 진출엔 모험심도 작용했다. "태평양을 건너는 힘든 일이지만 신천지도 구경하고 큰돈도 벌 수 있다는 말에 배를 탔다고 하셨지." 메리다 외곽에 사는 알베르도 도(82)가 전하는 아버지의 멕시코 진출 동기다. 이르마 송(77)의 외할아버지는 아홉 살에 혼자 배를 탔다. 송씨의 딸인 예니(55)는 "증조할아버지가 모험심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부랑자도 있었으나 모험심 많은 단신 이민자도 많았다는 게 88년 '한국인 멕시코 이민사'를 펴낸 이자경(61.미국 로스앤젤레스 거주)씨의 말이다.

◆ 선인장 가시가 새겨준 훈장="아버지는 한때 술만 마시면 아이고 하며 울었어…." 마르가리타 공(77)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다. 초창기 노동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대변하는 말이다. 유카탄 반도에서 한인을 맞은 것은 후텁지근한 날씨와 모기떼였다. 한인 1세대는 또 언어 장벽과 입에 맞지 않는 음식, 그리고 폭염이란 3중고에 시달렸다. 에네켄 잎을 잘라 50장을 한 단으로 묶어 야적장으로 실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새벽부터 해질 때까지 서툰 칼질로 작업량을 채우려 안간힘을 썼고 다리와 팔뚝엔 선인장 가시가 새겨주는 훈장이 늘어만 갔다. 초기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의 혹독한 고생이었다는 게 마리아 리의 증언이다. 그러나 손재주가 좋은 한인은 곧 생존법을 터득했다. 가시 때문에 작업 능률이 오르지 않자 에네켄 섬유와 동물 가죽을 이용해 장갑을 짜고 다리에 감는 각반도 만들었다. 이걸 착용하니 작업량이 급격히 늘었다. 에네켄 잎 2000장이 하루 기준이었으나 5000장, 심지어 8000장까지 따내는 사람이 생겼다. 처음 한인을 업신여기던 농장주 태도도 달라졌다.

◆ 멕시코에 뿌리내리다='묵서가 드림'을 안고 처음 멕시코에 도착한 한인은 1033명. 성인 여성 135명, 성인 남성 702명, 어린이 196명이었다. 모두 257가구에 단신도 196명이나 됐다. "아버지 말씀에 따르면 당시엔 다들 4년만 눈 딱 감고 고생하면 된다고 생각했대." 알베르도 도의 이야기다. 그러나 계약이 끝나 귀국을 생각할 즈음 조선의 국운도 다해 이들은 그만 돌아갈 곳을 잃고 말았다. 결국 1921년 288명이 쿠바로 제2의 이민을 떠나는 등 멕시코 진출 한인은 뿔뿔이 흩어졌다. 현재 5대까지 퍼진 한인은 메리다 일대 5000명 등 멕시코 전역에 3만여명으로 추정된다.

이들 한인 후손에게 지난 100년간 최대 뉴스는 '88년의 서울 올림픽 개최'였다고 한다.

멕시코=심상복 특파원

*** 에네켄은…

'애니깽'이란 영화가 있었으나 정확한 현지 발음은 에네켄(Henequen, 마야어)이다. 용설란의 일종으로 건조한 땅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 식물이다. 5년이 지나면 1년에 두 번씩 잎을 딸 수 있다. 길이 1~2m의 잎은 주위에 억센 가시가 있다. 초록색 잎의 껍질을 벗기면 질긴 섬유질이 나오는데 이것을 선박용 로프 등을 만드는 데 썼다. 1920년대 들어 인조섬유로 대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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