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형경의 책vs책] "사회가 만든 인간의 고통 모두가 나눠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사회적 고통
아서 클라인만 외 지음, 안종설 옮김, 그린비, 358쪽, 1만3900원

타인의 고통
수전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이후, 253쪽, 1만5000원

'사회적 고통'을 집어든 곳은 심리학 서적 코너에서였다. 그때는 고통이라는 말을 '쾌락 원칙'에 반하는 '현실 원칙'의 결과라는 정신분석학적 정의에 더 치중해 있었다. 고통이란 본질적으로 개인적 경험이며, 그 감각의 배타성 측면에서 볼 때 누구도 타인의 고통을 대신 체험해줄 수는 없다고 믿었다. 한 개인이 겪는 고통의 원인이 사회 구조나 제도 탓일 수 있고, 구성원의 고통에 대해서 공동체가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고 있다고 믿었다.

'사회적 고통'을 읽는 동안 그러나 몸이 아파왔다. '불가항력' '난공불락' 같은 언어들이 떠오르면서 개인의 고통이 어떻게 사회 구조나 제도의 틈바구니에 끼여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결과인가를 확인하는 일이 새삼 버거웠다. 이 책에는 사회학.인류학.의학.문학 등 서로 다른 분야의 학자 열 명이 자신의 분야에서 연구한 사회적 고통에 대한 논문이 실려 있다.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중앙 아시아 고원 지방의 가난, 정치 권력이나 이데올로기에 의해 파괴당하는 개인, 제도에 의해 억압당하는 여성, '잔혹하고 비인간적이며 굴욕적인 처우'인 고문의 역사, 세계 곳곳에서 간단없이 벌어지는 전쟁과 그 희생자들의 사례 등등. 책에 실린 글들은 연구 논문이라기보다는 증언에 가까워 보인다.

'사회적 고통'이 개인적 고통의 원인을 사회적 구조 속에서 분석하고 있다면 '타인의 고통'은 고통받는 개인보다는 미디어가 복제해내는 고통의 이미지와, 그 이미지를 수용하는 대중의 태도에 대해 고찰한 책이다. 특히 전쟁의 광기와 거기서 희생당한 개인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중점적으로 분석한다. 사진은 폭력과 고통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여러 미디어 중에서 가장 즉각적이고 사실적이며 잠언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책에는 '타인의 고통'을 증언하는 사진이 여러 장 실려 있는데 실제로 한 장의 사진에서 받는 충격이 본문 다섯 페이지를 읽는 것보다 더 강력할 때가 많다.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기아와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미디어에 의해 가공, 유통된다. 대중은 아침 식탁에서 그 잔혹하고 폭력적인 이미지들을 접하면서 '타인의 고통'을 '소비'한다. 이 책은 궁극적으로 타인의 고통을 상품화하고, 폭력을 관음증적 시선으로 바라보며, 집단적 경험과 주관적 인식 사이에서 벌어지는 간극에 대해 질문한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앞에 것보다 읽기가 더 힘들다. 책을 저만치 밀쳐두고 딴전을 피우던 중 '타인의 고통, 사회적 고통'의 현장을 찾아다니며 구호 활동을 하는 선배와 통화하게 되었다. 그저 안부를 주고받는 중이었는데 그 선배가 앞뒤 맥락 없이 이렇게 말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해 무감각한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이야."

매달 약간의 기부금을 내는 것으로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자신을 돌아보며 '막연한 고통'의 기미를 감지한다. 한 가지 명료한 게 있다면 이제 개인의 고통, 타인의 고통, 사회적 고통, 세계의 고통이 서로 구분할 수 없이 모호해졌다는 점일 것이다.

김형경 (작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