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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급수' 팔당호…2조8000억 헛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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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수도권 2000만 주민에게 먹기 좋은 물을 제공하기 위한 팔당호의 수질 개선사업이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정부는 팔당호 수질을 1급수로 만든다는 목표 아래 지난해 말까지 2조8000억원을 투입했지만 최근 환경 당국의 조사 결과 여러가지 기준에서 여전히 3급수에 머물고 있다.

게다가 환경부는 그동안 팔당호의 수질을 발표할 때 개선 실적이 분명한 생물학적산소요구량(BOD) 위주로 지표를 제시해 정확한 실상을 알리지 않았다는 비판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환경 전문가들은 수도권의 젖줄인 팔당호 수질 개선을 위해선 측정 기준을 새로 정하고 환경규제를 강화하는 등 근본적인 정책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 여전히 하급수인 팔당호 수질=환경부가 최근 전국 63개 댐.저수지.호수의 투명도를 조사한 결과 팔당호의 부영양화 정도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수도권 주민의 생명수인 팔당호 수질이 여전히 3급수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17일 팔당호 주변에 각종 오염 행위를 규제하는 경고 팻말이 세워져 있다.[최정동 기자]

투명도는 지름 30㎝의 흰색 원판을 물 속에 담가 서서히 가라앉히면서 육안으로 볼 수 없게 되는 때의 깊이를 측정하는 것으로 물속에 플랑크톤의 양이나 찌꺼기가 많으면 수치가 낮아진다.

이번 조사에서 팔당호의 투명도는 부영양화 기준인 2.5m를 훨씬 벗어나 과영양화 기준(1m 미만)에 육박하는 1.3m로 나타났다. 이는 가장 투명한 호수로 조사된 강원도 파로호(5.3m)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맑은 일본의 마슈(摩周)호수는 투명도가 41.6m며,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도 40.5m다.

환경 전문가들은 "이번 조사 결과는 팔당호에 식물성 플랑크톤의 번식을 일으키는 질소 등 영양물질이 넉넉하다 못해 과잉 수준이라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 환경단체들의 조사에 따르면 질소.인.화학적산소요구량(COD) 등 다른 수질 측정지표들도 팔당호의 심각한 부영양화를 말해 주고 있다.

팔당호 물속의 질소는 부영양화 기준치의 3.8배를 기록했고, 인은 2.4배로 나타났다. 특히 COD 값은 수돗물을 생산할 때 고도의 정수처리가 필요한 3급수 수질에 해당하는 4.1ppm이었다.

◆ 믿기 어려운 정부 발표=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팔당호 수질이 좋아지고 있다고 발표하고 있다.

환경부는 최근 "수질 측정의 대표적 지표 중 하나인 BOD가 1999년 1.5ppm에서 지난해 1.3ppm으로 개선되고 있다"며 "팔당호 수질이 1급수(1ppm 이하)에 근접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BOD만을 기준으로 수질을 따지는 것은 무리라며 질소.인 등 다양한 지표를 종합해 평균적인 개선 정도를 측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환경학계의 한 관계자는 "BOD는 수질 개선의 여러 지표 중에서 적은 노력을 기울여 가장 큰 개선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수질개선 발표 기준으로 적절치 않다"며 "환경부는 팔당호의 수질을 발표할 때 BOD 외 다른 기준치들도 명확히 공표해야 오해를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환경부 일각에서도 이 같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그동안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었지만 팔당호 수질을 1급으로 만든다는 목표는 연말까지도 달성하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 개선대책 새로 세워야=환경부는 수질을 유지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개발을 허용하는 '수질오염 총량제'를 한강 수계에 본격 도입하려 하고 있으나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해당 지방자치단체들이 규제 완화에 역행한다며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식수원을 보호하려면 팔당호를 포함한 모든 한강수계에 오염총랑제를 의무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세민환경연구소 홍욱희 소장은 "팔당호 주변에 하수처리장을 집중적으로 지어 BOD를 줄이는 데는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며 "상류지역 오염물질을 줄이는 데 주력하고 오염행위도 철저하게 감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립환경연구원 임연택 물환경연구부장은 "기존 하수처리장에 고도하수처리 기능을 추가해 질소.인을 제거하고 논밭에서 빗물에 씻겨 들어오는 오염물질을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찬수 기자
사진=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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