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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가·소설가의 힘 빌린 무대,실험정신으로 세계 발레 이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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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호 02면

1 파리 오페라발레단 무용수 전원이 등장하는 ‘데피레’.

발레를 하는 필자가 9월 22일 파리에서 만난 ‘추석 보름달’은 특별한 것이었다. 이날 파리 국립오페라발레단의 가을 시즌 첫 오프닝 무대가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롤랑 프티의 걸작들을 선보이는 이번 무대는 턱시도와 이브닝 드레스 차림의 관객이 어우러져 우아한 축제 분위기였다. 온통 화려한 꽃으로 장식된 극장 로비는 샤갈의 천장 벽화와 어우러져 극장을 더욱 환상적으로 만들었다.

파리국립오페라발레단 2010 가을시즌 오프닝 무대를 가다

1년에 한 번만 공연하는 ‘데피레’로 가을 시즌 개막
오프닝 갈라로 ‘데피레(Defile Du Ballet)’가 무대에 올랐다. 파리 오페라 발레단 소속 모든 무용수가 등장하는 이 작품은 1년에 단 한 차례, 가을 시즌 오프닝 무대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공연’이다. 무대 또한 독특하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리허설 룸까지 무대가 확장된다. 드가의 발레 그림에 나오는 바로 그곳이다. 리허설 룸에서 발레단 소속 전 무용수가 베를리오즈의 음악에 맞춰 무대까지 천천히 걸어나온다. 눈부신 행진이다. 장관이 따로 없었다.

2 파트리스 바르가 안무한 ‘드가의 어린 무희’.3 피나 바우슈가 안무한 ‘봄의 제전’

이어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역시 롤랑 프티의 대표작 중 하나로 ‘20세기 유럽 발레의 결정체’로 불린다. 이 작품에 나오는 파드되는 전 세계 갈라 공연에서 자주 등장하는 ‘인기 장면’이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심리소설을 재해석하는 롤랑 프티의 발레 언어는 작가 못지않은 섬세한 관찰력에 바탕하고 있었다. 꿈과 현실,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몽환적인 분위기로 표현해 객석을 압도했다. 프루스트의 문체가 무용수들의 감각적이고 정교한 몸짓으로 되살아나는 듯했다.

1945년 초연된 발레 ‘랑데부’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당대 프랑스 최고의 시인이었던 자크 프레베르가 가사를 쓰고, 조셉 코스마가 곡을 붙였다. 무대를 꾸민 사람은 20세기 최고의 화가 피카소다. 롤랑 프티가 파리 오페라 발레단을 위해 처음으로 안무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발레보다 발레음악이 훨씬 널리 알려졌다. 이브 몽탕이 영화 ‘밤의 문’에서 ‘고엽’을 불러 세계인의 애창곡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4 ‘랑데부’의 음악은 이브 몽탕의 노래로 잘 알려진 ‘고엽’이다.

‘랑데부’는 사랑과 배신, 죽음 등 무거운 주제를 다룬 철학적인 무대였다. 피카소의 그림 중 일부로 장식된 무대 위에 바바리코트를 입은 가수가 ‘고엽’을 부르며 등장한다. 이어 아코디언 연주자가 뒤따르며 반주를 한다. 심리적 고뇌와 갈등이 어우러지는 무대는 문학·연극·회화·음악이 무용을 중심으로 어우러졌다. 파격적인 장면들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는데, 무대 위에 나타난 발레리나는 토슈즈가 아닌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미녀와 야수를 재해석한 ‘늑대’(1954년 초연)에 이어진 ‘젊은이와 죽음’(1946년 초연)은 무용수들의 과장된 몸짓이 두드러졌다. 대본을 쓴 장 콕토는 이 작품이 발레가 아니라고 말한 바 있다. “말과 소리의 입체감을 제스처로 표현하려고 하는 일종의 무언극이다. 육체적 언어로 번역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그림·조각·음악과 마찬가지의 언어를 사용하는 독백이자 대화”라고 말했다. 이 작품은 영화 ‘백야’의 첫 장면으로 사용되어 다시 한번 유명해졌다.

피카소, 장 콕토 등 유명 예술가들의 신선한 감각을 수혈
사실 파리 오페라발레단의 역사는 발레의 역사 그 자체다. 17세기 ‘발레의 아버지’ 루이 14세가 세운 파리국립발레아카데미(1669)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전통과 역사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는 실험정신으로 현대 발레를 이끌어온 ‘젊은’ 발레단이다. 파리 오페라발레단이 처음으로 제작한 공연은 1776년 1월 Noverre의 ‘Medee Et Jason’이다. 이후 낭만발레의 대표작인 ‘라 실피드’(1832)와 ‘지젤’(1842)을 21세기인 지금도 무대에 올리며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17세기 이후 발레의 수도 위치를 지켜온 파리는 20세기 초 잠시 러시아에 그 자리를 내준 적이 있다. 발레 제작자이며 후원자인 세르기예프 디아길레프가 러시아 발레를 세계 발레의 중심으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20세기 중반, 세계 발레의 수도는 다시 파리로 옮겨졌다. 각 분야의 최고 예술인들의 감각을 수혈한 덕분이었다. 피카소, 장 콕토, 박스트 등 다양한 장르의 최고 예술가들이 현대 발레의 새로운 모델을 창출했다. 특히 피카소의 발레 사랑은 대단했다. 피카소는 파리 오페라발레단을 위해 여섯 차례나 무대미술을 담당했다. 사진작가 브라사이는 “피카소는 무대장식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리허설은 잘되고 있는지 늘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고 회고했다.

또 하나의 특징은 개성 있는 안무가들의 파격적인 안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루돌프 누레예프의 ‘라이몬다’(1983), ‘백조의 호수’(1985) 등 다양한 클래식은 물론이고, 70년대 중반 이후 피나 바우쉬, 머스 커닝햄, 모리스 베자르, 지리 킬리안, 마츠 에크, 윌리엄 포사이드, 안제린 프렐조카주 등 현대 발레의 흐름을 바꾼 세계적 안무가들이 파리 오페라발레단 무대에 섰다.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현대무용이 파리 오페라발레단을 통해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세종대 무용학과를 졸업하고 뉴욕대 대학원에서 무용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연세대 심리학 박사. 현재 한국발레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sunny@sejo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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