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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통증 없이 혈액 채취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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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 손가락 위에 올려 본 미세 바늘(上)과 미세 바늘이 촘촘히 박힌 판 위에 기존 주사 바늘 두개와 머리카락이 올려져 있다(中). 미세 바늘을 현미경으로 확대한 사진(下)으로 그 끝과 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다.

당뇨환자들은 수시로 손끝을 바늘로 찔러 혈액을 채취해야 한다. 혈당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도 한두 번이지 평생을 해야 한다면 고역일 수밖에 없다. 당뇨병은 아직 현대 의술로도 정복하지 못한 난치병 중의 하나다.

그러나 앞으로 그런 고통이 훨씬 줄어들 전망이다. 통증이 없으면서도 혈당을 재는 데 필요한 최소량의 혈액만을 채취할 수 있는 미세 바늘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계과 이승섭 교수는 머리카락 굵기의 바늘과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최근 밝혔다. 이에 따라 미세 바늘의 실용화가 가능하게 될 전망이다. 이를 이용하면 채혈 때 통증이 거의 없으며, 약물이나 화장품 등이 잘 스며들게 할 수 있는 등 극미세 바늘 활용의 새로운 세계를 열 것으로 보인다.

미세 바늘은 크기에 따라 0.5~1.5㎜, 굵기는 0.05~0.2㎜로, 그 가운데 작은 구멍이 뚫려 있는 형태다. 기존 바늘에 비해 지름이 10분의 1 정도다. 미세바늘을 손가락이라고 치면 기존 바늘은 손목만큼 굵게 보인다. 미세 바늘은 단 한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가 모여 있도록 만들었다. 마치 나무판에 작은 구멍이 뚫린 여러 개의 못이 삐죽 튀어나와 있는 모습이다. 소재는 사람 몸속에서 자연스럽게 녹는 플라스틱을 사용했다. 만일 살 속에서 부러지더라도 수술 봉합사처럼 자연히 분해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개발에는 아주 강한 X-선을 사용했다. 이는 미세 가공이 용이해 정밀하게 플라스틱을 자르고, 원하는 입체 형상을 조각해낼 수 있다. 길이나 굵기 등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것도 이 바늘 생산 기술의 특징이다. 미세 바늘은 가늘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니다. 너무 가늘면 피부를 찔러도 미세혈관을 빗겨가 피가 나오지 않거나 살 속에서 바늘이 부러지기 십상이다.

이 교수는 "가늘면서도 견고하고, 피가 안 나오게 하는 것보다 나오게 하는 것이 핵심기술"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외국에서 개발된 것은 형태를 바꾸기도 어려웠고, 바늘이 살 속에서 부러질 경우 염증을 일으키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또 대량으로 제작하기 어려웠다.

미세 바늘의 용도는 채혈 이외에도 다양하다. 미량의 약물을 주사하거나 고가의 기능성 화장품의 흡수율을 대폭 높이는 데도 이용할 수 있다. 미세 바늘 끝에 약물을 묻힌 뒤 피부에 꽂으면 약물의 흡수가 빠르게 이뤄진다. 지금까지 환부에 집중적으로 약물을 넣으려면 파스를 붙이거나 연고를 바르는 방법을 사용해 왔다. 그러나 약물의 흡수가 늦거나 흡수되지 않아 버리는 약물의 양이 많았다. 미세바늘은 이런 문제를 없앨 수 있다.

화장품에도 응용할 수 있다. 고가의 기능성 화장품을 미세 바늘에 묻힌 뒤 원하는 부위에 꽂으면 된다. 눈가의 주름살을 펴기 위한 화장품이라면 주름 부분에 화장품을 묻힌 미세바늘을 집중적으로 꽂는 것이다. 물론 이때는 가늘면서도 피가 나지 않고 통증이 없는 미세 바늘을 사용하면 된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미세 바늘은 그 굵기를 조절함으로써 피가 나게도, 안 나게도 할 수 있다.

미세 바늘은 초소형 의료기기의 개발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의료기기는 여러 기능을 초소형 의료기기에 한데 모으는 쪽으로 개발되고 있으나 이런 미세 바늘이 개발되지 않아 소형화에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관련 기술을 국내외에 특허 출원했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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