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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딸도 모두 예술하는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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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매카트니 (Paul McCartney·68)

폴 매카트니는 ‘매카트니 경(卿 ·Sir)’으로 불린다. 1997년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고 얻은 칭호다. 비틀스 멤버 중 유일하다. 그는 음악이 있는 가정에서 자랐다. 할아버지는 튜바 연주자였고, 아버지는 재즈 밴드에서 트럼펫을 불고 피아노를 쳤다. 아버지는 매카트니와 동생에게 음악가의 길을 적극 권했다. 음악 레슨을 받게 했고, 라디오에서 음악이 나오면 어떤 악기로 연주했는지 설명해주고, 또 맞히게 했다. 동네에 브라스 밴드가 오면 두 아들을 연주회에 데려갔다. 교육열도 높았다. 간호사였던 어머니는 어린 아들에게 시를 읽어줬고, 아버지는 ‘어휘력에 도움이 된다’며 신문의 낱말 퍼즐을 함께 풀었다. 폴은 상위 25%의 학생만 합격하는 중학 입시를 무난히 통과할 수 있었다.

14살 때 유방암 수술 후유증으로 어머니를 잃었다. 이는 훗날 존 레넌을 만나 교감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됐다. 레넌은 17살 때 어머니를 교통사고로 잃었다. 둘은 의기투합해 비틀스를 결성했지만, 얼마 안 가서 갈등을 거쳐 애증의 관계로 발전한다. 80년 레넌이 암살당한 그날 밤, 매카트니는 TV 앞에 앉아 밤새도록 통곡하며 ‘친구’를 보냈다.

비틀스 해체 후 매카트니는 71년 첫 부인 린다와 ‘윙스’라는 밴드를 결성했다. 나름 성공을 거뒀으나 자신도 암살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81년 활동을 접었다.

사진작가였던 린다와 매카트니는 소문난 잉꼬부부였다. 10년간 음악의 동반자, 29년간 인생의 동반자였다. 린다가 유방암으로 숨지면서 죽음이 그들을 갈라놓았다. 채식주의자였던 부부는 동물 보호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매카트니는 린다가 떠난 지 4년 후 모델 출신 헤더 밀스와 재혼한다. ‘공익 본능’을 발휘해 헤더가 하던 지뢰 반대운동에 적극 동참한다. 한 재력가의 부인을 위한 개인 콘서트를 해주고 받은 개런티 100만 달러를 지뢰 제거 운동 단체에 쾌척했다.

클래식 음악을 작곡하고, 시집과 동화책을 펴내며, 그림 전시회를 열고, 미술 평론도 하는 등 다방면에서 그는 ‘예술 본능’을 뽐내 왔다. 자녀도 모두 예술가다. 도예가인 헤더(47), 사진가인 메리(41), 패션 디자이너 스텔라(39), 작곡가 겸 조각가 제임스(33)를 뒀다. 둘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얻은 막내 딸 비트리스는 일곱 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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