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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열리는 아카데미] 휴먼스토리 열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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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 아카데미 작품상을 노리는 영화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레이''에비에이터''네버랜드를 찾아서'.

'영화공장' 할리우드의 최대 이벤트인 아카데미상 시즌이 돌아왔다. 27일(현지 시각) 할리우드 코닥극장에서 열릴 올 행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작품상 후보에 오른 다섯 작품 모두 삶의 희로애락에 집중한 휴먼 드라마라는 점. 특히 '에비에이터''레이''네버랜드를 찾아서'는 영화.음악.문학 등 예술분야에서 열정을 불사른 사람을 돌아본 전기영화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캐릭터를 중심으로 세 영화의 특징을 살펴본다.

*** '레이'

솔 음악 대부 인생 역정…폭스 신들린 연기

2002년 아카데미 시상식장의 '검은 열풍'이 올해에도 불어올까. 당시 남녀 주연상을 받았던 덴절 워싱턴과 핼리 베리의 '기적'을 올 서른여덟의 '늦깎이 스타' 제이미 폭스가 이어갈지 주목된다. 솔 음악의 대부 레이 찰스(1930~2004)를 스크린에 옮긴 '레이'에서 폭스가 보여준 신들린 연기 때문이다. 마침 레이 찰스는 올해 그래미상 8개 부문을 석권, 사후에 이 상을 수상하는 드문 영광을 누렸다.

'레이'는 음악영화다. 가스펠.로큰롤.재즈.리듬&블루스.컨트리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던 레이의 히트곡 40여곡을 생전에 녹음한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 그렇다고 폭스가 레이의 겉모양만 빌려온 건 아니다. 어린 시절 피아노를 익혔던 그는 천재 가수 레이의 손 떨림, 얼굴 표정, 걸음걸이 하나하나를 완벽하게 재현했다. 폭스는 일곱 살에 눈이 먼 레이를 연기하려고 한 달의 반은 눈을 감고 살았다.

'레이'는 음악의 위대함을 노래한다.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간 레이가 실명을 딛고 미국 팝계의 정상에 오르는 과정을 촘촘하게 엮어가는 것. 선배 가수 냇 킹 콜의 모창가수로 출발해 독창적 음악에 도달하기까지의 역정이 펼쳐진다.

마약 없이는 창의적 악상이 불가능했던 예술가의 고뇌, 사랑하는 부인을 두고도 끝없이 다른 여인을 찾아가는 자기 모순, 흑백으로 나뉜 세상을 음악으로 넘어서려 했던 열정이 흘러넘친다. 레이를 평생 짓눌렀던 어린 시절의 불행, 즉 동생의 익사 순간을 목격했던 비극이 사이사이 플래시백(회상)으로 끼어든다. 감독은 '사관과 신사'의 테일러 핵포드. 폭스는 '콜래트럴'로 남우조연상 후보에도 올랐다. 25일 개봉.

박정호 기자

*** '에비에이터'

영화 재벌 휴즈 일대기…디캐프리오 열연

거장 마틴 스코시즈 감독과 특급 스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갱스 오브 뉴욕'이후 재회한 '에비에이터'는 올 오스카상의 최대 기대주다. 작품상을 노리는 다섯 작품 가운데 규모(제작비 1억1000만달러 추정)가 가장 크고, 억만장자의 집념과 몰락이란 소재 또한 미국인의 정서에 강하게 호소한다.

'에비에이터'는 20세기 미국 영화.항공산업에서 괄목할 족적을 남긴 하워드 휴즈(1905~76)의 일대기. 열여덟에 선친이 경영하던 회사를 물려받고, 누구에게도 '1등'을 양보하지 않았던 휴즈의 승부욕을 부각했다. 일례로 그는 당시로선 천문학적 숫자인 380만달러를 쏟아부은 '지옥의 천사들'(1930년)을 만들며 단숨에 할리우드의 최고 자리에 오른다.

비행사를 뜻하는 제목처럼 휴즈는 뛰어난 조종사였다. 비행기 사고로 두 번이나 생명을 잃을 뻔했다. 영화는 성공을 향해 질주하는 휴즈를 시간순으로 따라가고, 또 그와 관계했던 에바 가드너.캐서린 햅번 등 스타 여배우를 등장시키며 스크린.항공으로 상징되는 20세기 미국 자본주의의 안팎을 드러낸다.

무엇이든 완벽을 추구했던 휴즈는 역으로 지독한 결벽주의자였다. 개인전용 비누를 휴대하고, 순백색 티슈를 사용해 물건을 집고, 심지어 말년에 진공 유리관에서 생활했다. 보통 사람은 몸서리 처질 정도로 병적이었다.

감독은 '완벽=성공'과 '결벽=몰락'이란 휴즈의 두 얼굴을 동전의 앞뒷면처럼 냉정하게 보여준다. 꽃미남 디캐프리오의 꽉찬 연기도 만족스럽다. 아카데미와 인연이 없었던 두 사람의 수상 여부에 눈길이 몰리고 있다. 18일 개봉.

박정호 기자<jhlogos@joongang.co.kr>

*** '네버랜드를 찾아서'

연극 '피터팬' 탄생과정 그려

'네버랜드를 찾아서'는 지난해 런던 초연 100주년을 맞았던 '피터팬'의 작가 제임스 M 배리(1860~1937)의 이야기를 그렸다는 점에서 '에비에이터''레이'와 같은 전기영화다. 그러나 다른 두 영화와는 달리 배리의 일생보다 '피터팬'의 탄생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어 분위기는 많이 다르다.

그래서인지 지독한 결벽주의자인 모험가(에비에이터)나 마약과 여자에 찌들었던 맹인 천재 음악가(레이)에 비해 주인공 캐릭터가 주는 강렬함은 떨어지는 편이다. 잘 나가는 극작가가 잠시 슬럼프를 겪다 공원에서 우연히 만난 류엘린 데이비스 집안의 다섯 모자(母子) 와의 우정을 통해 명작 '피터팬'을 탄생시킨다는 게 영화의 기본 뼈대. 배리 역의 조니 뎁이 남우주연상 후보로 오르긴 했지만 그의 수상을 점치는 사람이 적은 이유도 이런 캐릭터 자체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그렇다고 조니 뎁의 연기가 결코 뒤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열세 살에 사고로 죽은 형의 영향으로 "열세 살 이후 일부러 성장을 멈췄다"는 이 영원한 동심의 소유자를 누구보다 잘 소화했다.

배리는 '피터팬'초연을 앞두고 '어른 역이든 아이 역이든 어린이 마음으로 연기에 임할 수 있는 연기자'를 캐스팅 조건으로 못박았다. 그리고 이 지침은 이번 영화에도 그대로 적용돼 누구보다 어린이 같은 순수한 영혼을 잘 표현하는 조니 뎁이 선택된 것이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스토리가 관객의 몰입을 도와준다. 맛보기로 등장하는 연극 '피터팬'을 보는 재미도 놓칠 수 없다. 25일 개봉.

안혜리 기자<hye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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