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파괴한 자연, 결국 인간이 되살릴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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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구달이 28일 서울 정동 프란체스코 교육회관에서 『희망의 자연』 한글판 출간기념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늘날 사람들은 지혜를 잊은 것 같아요. 오늘 내가 한 결정이 먼 미래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는 것이 지혜죠. 그런데 요즘에는 당장 이익이 있을지, 주주총회에서 좋은 결과가 있을지, 다음 선거 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만을 고려해 결정을 내립니다. 머리가 아무리 똑똑해도 열정과 연민과 사랑이 없으면 지혜를 발휘할 수 없지요.”

세계적인 환경운동가이자 ‘침팬지들의 대모’로 불리는 제인 구달 박사(76)가 신간 『희망의 자연』의 한국 출간에 맞춰 방한했다. 28일 서울 정동 프란체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동물의 세계에서 인간과 침팬지는 놀라울 정도로 닮은 점이 많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침팬지와 인간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인간이 훨씬 똑똑하다는 것”이라며 “그러나 그렇게 잘나고 똑똑한 인간이 어떻게 지구를 이렇게 망칠 수 있는지는 정말 의문”이라고 말했다.

구달 박사는『희망의 자연』을 자연을 망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만 채우지 않았다. 『침팬지와 함께한 나의 인생』『내가 사랑한 침팬지』등 침팬지 관련 저서로 유명한 그이지만 이번 책에선 침팬지를 다루지 않았다. 대신, 멸종 위기의 종들을 구하려 애쓰는 사람들의 노력과 열정을 담았다. 26년간의 아프리카 현장 연구를 뒤로하고 여행길에 오른 뒤 세계 곳곳에 다니며 만나 사람들이다. 이 책은 환경운동가로서의 인생 2막을 집대성한 것이다.

구달 박사는 자신을 스스로 ‘낙관주의자’라고 불렀다. 지구상에는 충격적인 자연 파괴가 벌어지고 있고, 지구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 견해를 가진 학자도 많지만 “우리가 아직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희망을 말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고 했다. “희망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죠. 저는 희망이 많다고 믿어요. 다만, 우리 모두가 생태계 보호에 참여했을 때만 희망이 있습니다.”

그는 대표적인 예로 ‘검은 울새’ 이야기를 꼽았다. 암수 두 마리만 남아 완전 멸종 직전까지 갔으나 학자와 운동가들의 노력으로 400개체까지 늘어났다고 한다. 그 외에도 기껏해야 6~7마리 정도 남았다가 종의 유지가 가능해진 동물도 적지 않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자연 사랑을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어떻게든 바깥에서 놀게 하고, 손을 더럽히고, 음식 재료가 어디서 오는지를 알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출신인 구달 박사의 한국 방문은 이번이 네 번째. 그는 “1년에 300일을 해외에서 보내고 있다”며 “세계를 돌면서 지금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또 다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한 환경운동 ‘뿌리와 새싹’(www.rootsandshoots.org)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그는 29일 오후 1시 경기도 국립광릉수목원에서 한국의 뿌리와 새싹 회원들도 만난다.

“뿌리와 새싹은 한국을 포함해 전세계 121개국에서 급속도로 확산돼 6만 개 이상의 그룹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환경 문제는 기성세대에게만 기대해서는 한계가 있죠. 젊은이들이 함께 참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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