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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숨은 욕구 읽어야 혁신 성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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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지난해 영어로 출간된 경영경제 도서는 4000권이 넘는다. 대개는 혁신을 주제로 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기업의 90% 이상이 혁신 활동에 실패하고 있다.”

영국계 컨설팅회사인 ‘시스테매틱 이노베이션’의 데럴 만(사진) 대표는 “혁신은 힘든 과제”라며 운을 뗐다. 최근 한국능률협회컨설팅(KMAC)이 주최한 ‘새로운 글로벌 성장엔진-비즈니스 트리즈’ 세미나에서 특강을 한 그는 “이해관계자의 ‘숨은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혁신이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롤스로이스 자동차연구원 출신인 만 대표는 1990년대 초반 ‘비즈니스 트리즈’ 개념을 처음 제시한 인물. 옛 소련에서 개발된 ‘창의적 문제 해결 방법론’인 트리즈를 기업 경영에 확대 적용한 것이다. 그는 “기존 트리즈가 복잡한(complicated) 기술문제 해결에 주력했다면 비즈니스 트리즈는 사람의 심리를 포함한 상품 기획, 투자 결정 등 복합적인(complex) 문제에 대한 해법을 모색한다”고 설명했다.

성공 사례로는 영국의 ‘핑크 레이디스 택시’를 꼽았다. 자동차의 내외부를 분홍색으로 도색한 여성 전용 택시인 핑크 레이디스는 2005년 런던에서 첫선을 보인 이래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직장인 여성이 퇴근길에 택시를 이용하는 것은 하루 종일 고생한 자신에게 보상하고 싶은 심리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목적지까지 안전한 운행을 원한다. 핑크 택시는 이런 숨은 욕구를 찾아냈다. 혁신적인 상품은 좋은 결정과 현실적인 결정, 두 가지를 동시에 충족시켜야 한다.”

핵심은 고객의 숨어 있는 마음을 읽는 것이다. 만 대표는 “젊은 남성들이 고가의 스포츠카인 포르셰를 타는 이유는 성능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성에게 어필하는 데 효과적이어서”라며 “그런데 설문조사를 통해 이런 의미를 과연 알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아이폰 신드롬을 일으킨 애플은 시장조사를 잘하는 회사가 아니라 시장의 숨은 욕구, 즉 진짜 욕구를 잘 찾아낸 회사”라고 덧붙였다. 150여 명의 연구원을 두고 영국과 홍콩·일본 등에서 활동 중인 그는 “한국에서는 KMAC와 제휴해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상재 기자

◆트리즈(TRIZ)=‘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원리’라는 뜻. 1950년대 옛 소련 해군에 근무하던 겐리히 알츠슐러가 창안한 개념으로, 실타래처럼 얽힌 문제도 간단한 발상의 전환으로 해결 가능하다는 혁신 방법론이다. 초고층 건물의 엘리베이터를 저층용과 고층용으로 분리해 기다리는 시간을 줄인 게 이런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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