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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일본의 장례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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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화장터는 어디에서나 혐오 시설로 배척받곤 한다. 화장률이 99.5%에 이르는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연기와 악취, 그리고 음산한 분위기 탓일 게다.

그런데 일본엔 지역의 명소로 자리잡은 화장터가 있다. 1996년 세워진 규슈(九州)지역 나카쓰(中津)의 '바람의 언덕 장재장(風の丘葬齋場)'이다. 이곳에선 화장터 특유의 굴뚝을 찾아볼 수 없다. 재연소 버너가 달린 최신 화장로가 연기와 악취를 완전히 태워 없앤다. 이것만으로도 주민의 민원을 막을 수 있었다.

여기에다 건축 자체에 신경을 많이 썼다. 설계는 저명한 건축가 마키 후미히코(文彦)가 맡았다. 완공되자마자 건축학도들의 견학 코스가 됐다. 또 부지 내 6000여평의 공원엔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을 상징하는 조형물들이 고즈넉이 자리잡고 있다. 비탄에 빠진 유족들이 삶의 의미에 대해 명상할 수 있게 하자는 의도다. 이렇게 밝고 차분한 분위기 때문에 지역 초등학생들이 소풍을 오기도 한다. 그래서 이곳은 일본에서 '장례 하드웨어'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소프트웨어에서도 새로운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장례를 어엿한 서비스 산업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이다. 과거 일본에서도 장의사의 이미지는 좋지 않았다. 요금이 비싼 데다 불투명하고, 과외로 드는 비용이 많았다. 부르는 게 값이요, 얹고 얹어 왕창 씌워도 유족들은 당하기만 했다.

그러나 최근엔 이를 비즈니스 찬스로 낚아채 급성장하는 기업들이 나왔다. 이른바 '장례 벤처'다. 그중에서 주목받고 있는 게 일본 장례업계의 개혁리더로 불리는 에폭 재팬이다. 경영학 석사(MBA) 출신의 30대 경영자가 '뉴서비스'를 주창하며 2000년 설립한 기업이다. 요금체계를 상세히 공개하고 다양한 가격의 패키지 상품을 개발한 게 먹혀들었다. 특히 허례허식을 없앤 실속형 패키지가 좋은 반응을 얻었다. 자녀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노인을 위해 매달 조금씩 장례비를 적립하도록 하는 예약상품도 내놓았다.

이처럼 일본의 장례문화는 개선을 거듭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보건복지부 장사제도개선추진위원회가 제도 개선안을 마련했다고 한다. 미조정이 아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양쪽에서 획기적 개혁을 기대해 본다.

남윤호 패밀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