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내 생각은…

부실 대학에 자발적 퇴출의 길 열어주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서 구조조정이란 말을 흔히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사회 각 분야에서 경쟁 압력이 높아지면서 기업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은 생존 자체를 위한 수단이 되고 있다. 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대학의 구조조정은 여러 차원이 있을 수 있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정원 감축이다. 대학이 현재 정원을 유지하더라도 20년 후인 2030년에는 고교 졸업생이 대학 정원의 3분의 2에 불과하게 된다. 물론 이는 모든 대학이 정원의 3분의 1을 줄여야 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교육의 질이 낮은 학교들이 퇴출되는 형태의 구조조정이 요구되는 것이다.

사실 이미 수년 전부터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학교가 많이 생기고 있다. 등록금에 크게 의존하는 우리 대학재정의 특성상 정원을 채우지 못할 경우 교육 부실로 연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원 미달→재정 부실→교육의 질 저하라는 악순환 속에서 적지 않은 사립대학이 학생 모집이 어려워 경영 한계에 달한 이른바 ‘한계 사학’이 되고 있다.

원칙적으로 말한다면 이런 한계 사학들에 대한 조치는 시장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학에 대한 등록률·충원율·취업률 등의 정보를 소비자인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구체적으로 전달함으로써 학생들의 합리적인 선택을 돕는 것이다. 이어 정부는 이런 대학들에 재정지원을 중단함으로써 소비자들의 압력에 의한 퇴출이 이루어지도록 유도하면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시장 기제만으로 대학들의 변칙 운영까지 막기는 어렵다. 예컨대 대학이 학교에 다니지 않고 학적만 유지하는 ‘유령’ 학생들로 충원율을 높이고, 이들에게 장학금까지 지급하면서 장학금 지급률을 높이며, 어려운 재정은 교직원들의 임금을 낮추는 방식으로 대응할 경우 이 학교는 지표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현재로서는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운 대학들이라도 자발적으로 학교 문을 닫을 유인이 없다는 점이 대학구조조정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 지금까지 실제적인 통폐합 실적이 저조한 원인도 근본적으론 자발적 퇴출 유인이 없다는 데 있다.

자발적 퇴출을 유도하려면 학교법인 해산 시 잔여재산을 공익법인·사회복지법인으로 출연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등 잔여재산 귀속특례 제도도 고려해 볼 수 있다. 퇴출 유도가 어렵다면 사립대학 간 바람직한 형태의 인수합병 쪽에 기대를 걸 수 있다. 인수 및 피인수 대학 간 협의를 유도하고, 폐지되는 대학의 입학정원을 인수 사학 정원으로 증원토록 지원하는 등 통폐합을 유도하는 방안들은 사회적 합의 속에서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폐지 대학의 교지·교사 용도를 교육용에서 수익용으로 변경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다.

이러한 특별한 조치들도 대학정보 공시제 및 대학 평가 인증의 강화를 통해 부실한 대학들에 퇴출 압력이 가해질 때 작동할 수 있다. 시장을 통한 구조조정 압력과 적절한 유인을 통한 자발적 퇴출 및 통폐합 유도라는 정책조합이 학생과 국가의 미래를 부실 교육의 폐해로부터 막아낼 것이다. 이는 매우 시급한 과제다.

김진영 건국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