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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토크] 명품 브랜드들의 콧대가 하염없이 높은 이유

중앙일보

입력

[중앙포토]

인간 명품과는 거리가 먼 '4억원 명품녀'로 인해 한동안 세상이 떠들썩했다. 그래도 그녀와 Mnet이 하나 기여는 했다. 사람들에게 짭짤한 안주를 제공했다. 직장인들 술자리나 추석 연휴에 좋은 씹을 거리를 공짜로 준 것이다.

명품업체들은 이번 일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명품의 이미지가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속물들이나 좋아하는 게 명품이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럼에도 루이뷔통 핸드백이나 구찌 선글라스 판매가 줄어들 것으로 보면 오산이다. 명품이라면 양잿물도 마시겠다며 선 줄이 까마득하기 때문이다.

"명품은 왜 그리 비싼 거야?" 명품 광고를 많이 취급하는 글로벌 매거진을 만들다 보면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많다. 이게 질문인가? 그렇다면 실망이다. 명품이기 때문에 비싼데 무슨 다른 설명이 더 필요한가. 왜 다들 명품에 열광하는가. 이것도 마찬가지다. 명품이기에 열광하는데, 왜 열광하냐고? 무명 브랜드 제품엔 좀처럼 눈길도 주지 않는 우리 자신이 아니던가.

도대체 명품이란 뭔가. 말 그대로 품질이 좋기로 널리 알려진 제품이다. 그렇게 되려면 기본적으로 시간이 필요하다. 굳이 햇수를 따지자면 적어도 70~80년, 좀 더 엄격하게 선을 그으면 100년은 넘어야 하지 않을까. 이 정도 시간을 견뎌내야만 명품 대열에 낄 수 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시간은 살 수 없다. 부자들도 다 죽는 이유다. 어느 갑부가 최상의 재료로, 최고의 디자이너를 사서 만들어도 명품 대열에 낄 수 없는 것도 바로 이 시간 탓이다. 명품 브랜드들의 콧대가 하염없이 높은 것도 바로 이거다. 필기구로 유명한 독일의 파버카스텔은 자그마치 25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이런 장구한 세월을 견디는 동안 품질만은 최고라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들었는데 뭐가 더 필요한가. 역사와 전통, 그리고 여기에 걸맞는 품질 말고도 필요한 건 많다. 무엇보다 제품 속에 장인정신이 살아 숨쉬어야 한다. 그들은 특히 이걸 강조한다. 여기 장인의 손때와 혼이 보이지 않느냐고? 보이지 않아도 보인다고 답하는 게 좋다. 그러지 않으면 은근히 무시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 빠지지 않는 게 '이야기'다. 스토리텔링이 새로운 마케팅 툴이 되면서 명품들은 과거 자신들의 역사 속에서 이걸 찾아내 고객들에게 전하는 데 여념이 없다. 샤넬의 '더블C'는 창업자 가브리엘 샤넬의 애칭 '코코(Coco)'에서 따왔는데, 불행했던 어린 시절 보육원 창문에 비친 초생달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는 식이다.

디자인과 컬러감각도 좋아야 하고, 변덕 심한 소비자들의 마음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명품이라고 유행을 무시하면 안 된다. 명품이라고 해서 과거와 전통만 먹고 사는 게 아니다. 시사 트렌드를 읽는 센스까지 겸비해서 나온 것이 오늘날의 명품이란 물건이다. 몇 년 전 유행한 적이 있는 누드 핸드백이 그런 예다. 이 아이템은 항공기 테러 대책으로 나온 투명 비닐백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라고 한다.

아무리 이렇게 설명해도 여전히 수긍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4억원 명품녀 소동에서도 나온 가방 하나가 3000만~4000만원이라고 한다. 이른바 에르메스 버킨백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가격이 정해질 수 있느냐고 항의한다. 다시 말하지만 가격을 따지지 마라. 우스운 짓이다. 명품업체 사람들은 "가격이 비싸다고 따지는 당신 같은 사람들에겐 우리 물건을 팔 생각이 없다"는 입장이다.돈이 아주 많거나 귀족 신분을 자랑하는 사람들을 겨냥해 만든 물건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그럴 능력이 없으면 괜히 열내지 말라는 것이다. 피차 혈압만 높아질 테니까.
메이커들은 자신들이 만드는 명품은 남다른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가치(value)가 남다르면 가격(price)도 남달라야 하는가. 당연한 말이다. 시대를 관통해 높은 가치를 지니는 물건은 예로부터 특별 대접을 받아왔다. 골동품이나 예술품이 그렇다. 가치를 재기 어려운 고려 청자는 그 때도, 조선시대도, 지금도 아주 귀한 몸으로 대접받고 있다. 스위스 출신의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년)의 청동 조각상 '걷는 사람'이 2010년 2월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에 팔렸다. 자그마치 1억430만 달러(약 1120억원). 피카소의 '파이프를 든 소년'이 세운 기록을 경신했다. 아주 뻘쭘한 키에 젓가락 같은 두 다리로 걸어가는 이 사내, 광물 원가로 치면 몇 만원이나 될까. 이렇게 말하면 무식하기 이를 데 없다는 핀잔을 듣기 안성마춤이다. 예술작품을 재료비로 환산하려 하다니…쩝.
명품업체에 몸 담고 있는 디자이너들은 자신들도 예술품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예술가인데 일하는 분야만 조금 다를 뿐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자신들이 만드는 것은 제품은 아니라 작품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가격 체계도 일반 제품을 기준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심상복 기자(포브스코리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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