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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다리 없이 14시간 헤엄 … 34㎞ 영불해협 건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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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사지가 없는 프랑스인 필리프 크루아종이 18일(현지시간) 오전 영국 남동부 포크스턴 앞바다에서 프랑스를 향해 출발하고 있다. [포크스턴 AFP=연합뉴스]

인류의 ‘무한도전’이 또 한번의 승리를 기록했다.

팔다리가 없는 장애를 가진 프랑스인 필리프 크루아종(42·사진)이 18일(현지시간)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바다 34㎞를 헤엄쳐 건너는 데 성공했다. 사지가 없는 장애우로서는 세계 최초다. <본지 9월 11일자 12면>

크루아종은 이날 오전 8시쯤 영국 남동부의 포크스턴 해안에서 프랑스로 향해 출발했다. 두 허벅지에 매단 오리발이 물살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동력원이었다. 팔꿈치 윗부분까지만 남아 있는 두 팔은 몸의 균형을 잡는 역할만 할 수 있었다. 좌우로 얼굴을 돌리기 어렵기 때문에 호흡은 입에 문 스노클에 의지했다. 13시간30분의 악전고투, 드디어 크루아종은 영불해협(도버해협) 너머의 프랑스 칼레 인근 해안에 도착했다. 그가 뭍으로 오르자 해안에서 기다리던 수십 명의 사람이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터뜨렸다. 해협을 건너는 데는 당초 20시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됐으나 좋은 날씨 덕에 바다가 비교적 잠잠해 속도가 훨씬 빨랐다. 평균 수영 속도는 약 시속 3㎞였다. 이 구간을 도영하는 데는 수영선수들도 9시간 이상 걸린다. ‘아시아의 물개’ 고(故) 조오련씨는 1982년 9시간35분 만에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영불해협 횡영(橫泳)에 성공했었다.

AFP통신에 따르면 크루아종은 해협을 건너는 동안 돌고래 떼를 만났다. 돌고래들은 한동안 그의 주변에서 맴돌았다. 배로 그를 뒤따르던 사람들은 도전 성공의 전조로 이를 해석했다고 한다.

금속 기능공이었던 크루아종은 1994년 TV 안테나를 고치기 위해 지붕 위로 올라갔다가 2만 볼트 전기선에 감전되는 사고를 당했다. 팔다리 조직이 파괴돼 팔꿈치와 무릎 이하의 사지를 절단해야만 했다. 그는 수술을 끝내고 입원실에서 한 여성의 영불해협 횡단을 소개하는 TV 다큐멘터리를 보고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된다면 언젠가 저 일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다. 그가 실제로 수영을 배우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2년 전이었다. 사고 전에도 수영을 할 줄 몰랐던 그는 하루 5시간 이상씩 수영 훈련을 했다. 8월에는 프랑스 내에서 섬을 횡단하는 연습도 했다.

두 아이의 아버지인 크루아종은 “나 자신과 가족, 예기치 못한 불행한 일로 삶의 의욕을 잃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을 비롯해 각계 인사들은 그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영불해협은 인류가 끊임없이 한계에 도전한 곳이다. 18세기는 여러 명이 기구를 타고 건너려다 목숨을 잃었다. 기구에 의한 횡단 성공은 1785년 프랑스인 장 피에르 블랑샤르와 영국인 존 제프리에 의해 처음 이뤄졌다. 1909년에는 프랑스 비행사 루이 블레리오가 엔진을 장착한 프로펠러기로 첫 항공기 횡단에 성공했 다. 이 해협에는 1995년 해저 터널이 뚫려 20여 분이면 기차로 건널 수 있다.

파리=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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