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자들은 각 개인의 의상은 그 자체가 기호 언어이며 무언(無言)의 신호체계, 곧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로 존재한다고 정의한다. 말처럼 옷에서도 특유의 어휘와 음색이 있다고 본 것이다. 외모와 말, 행동 외에 그 사람의 성향이나 성격을 판단하는 좋은 단초를 의상에서 찾기도 한다. 정부의 고위 관리나 보수 정치인을 일컬어 부르는 ‘그레이 슈트(Gray Suits)족’은 색상을 통해 권위적인 풍토를 은유한 예라 할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신언서판(身言書判), 즉 몸·말씨·글씨·판단의 네 가지를 인물평가의 기준으로 삼았다. 하지만 복장을 통해 정치적 성향을 나타낸 일도 빚어졌다. 조선 후기에는 당파의 대립이 극심해지다 보니 의관의 양식조차 서로 달랐다. 머리에 쓰던 복건(幅巾)이 그것이었다. 정조 때 서인들은 복건을 착용한 반면 남인들은 착용하지 않았다. 정조는 “한 조정에 있으면서 어찌 복색이 다를 수 있으랴”라고 개탄했다고 한다. 결국 당시의 주류 세력이었던 서인을 따라 남인도 복건을 씀으로써 논란이 마무리됐다. 의상이 권력의 상징이었던 셈이다.
최근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가 각국의 ‘독재자’ 10명의 패션을 분석해 보도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인민복을 비롯해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카다피 리비아 국가 원수,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등의 의상이 품평 대상에 올랐다. “독재자들은 복장을 통해 때론 정치를, 때론 힘(Power)을 보여준다”는 게 FP의 결론이다.
패션은 이제 연예인의 전유물이 아니다. 요즘 학계에선 정치사회학적 연구가 활발하다. 패션을 개인과 집단의 사회적·정치적 위상과 철학을 내보이는 메시지라고 보기 때문이다. 개성과 철학의 날개를 단 옷으로 추석빔을 차려입어 보는 것도 괜찮겠다.
고대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