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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화음과 협연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84호 02면

지난주 ‘해피 선데이-남자의 자격, 박칼린이 남긴 것’ 리뷰를 재미있게 읽었다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저도 이 프로그램을 잘 보고 있는데요, 새삼 음악의 위력에 대해 실감하곤 합니다. 알토와 소프라노, 테너와 베이스라는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입체적으로 하나가 되는 과정은 언제 봐도 뿌듯하고 짜릿하죠. 지휘자 박칼린은 단원들에게 지속적으로 요구합니다. “자기 소리만 뱉으려 하지 말고 남의 소리를 들으세요. 그리고 딴 데 보지 마시고 저를 보세요.”

전문가로서 그의 권위는 단원들의 부족한 점을 정확히 지적하는 데서 나옵니다. 그러면서 ‘서로 다른’ 그리고 ‘저 잘난’ 목소리의 단원들을 하나로 묶어내지요. 진정한 리더란 어때야 하는지 이렇게 명쾌하게 보여준 적도 드물 겁니다.

음악의 가공할 위력을 다루기로는 영화 ‘기적의 오케스트라-엘 시스테마’(사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저예산 다큐멘터리가 개봉 한 달 만에 2만 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이 들어와 있네요. 단원 80%가 빈민가 출신인 베네수엘라의 국립 청년·유소년 오케스트라 시스템 육성재단 엘 시스테마를 소개하는 이 다큐멘터리는 입소문 덕분에 오히려 스크린 수가 늘어났다고 합니다.

희망이라곤 찾을 수 없던 빈민촌 허름한 차고에 음악소리가 들리기 시작합니다. 1975년 경제학자이자 정치가였던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와 그의 동료가 전과 5범 소년을 포함한 11명의 아이에게 음악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죠.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35년이 지난 지금, 이 음악 지원센터는 180여 곳으로 늘었고 단원은 26만 명이 넘습니다. 거장 사이먼 래틀이 차세대 지휘자로 꼽은 구스타보 두다멜도 바로 이 엘 시스테마 출신이죠.

꾀죄죄한 소년들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음악을 ‘즐기는’ 장면에선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비록 악기가 모자라 ‘종이 모형’으로 합주를 연습하지만, 훌륭하게 연주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그들의 표정엔 흘러넘칩니다. 추석입니다. 오랜만에 모인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멋진 음악처럼 조화를 이루는 한가위가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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