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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람] 연 만들기 90년 노유상씨 "전쟁 때도 연 날렸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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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 전통 연 기능보유자 노유상씨(左)가 손자 노순씨(右)의 작품인 방패연을 들고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다. 신동연 기자

황해도 장연에 살았던 열한 살 소년의 눈엔 집 앞의 두견산(250m 남짓)이 까마득히 높아보였다. 그런데 난생 처음 날린 연(鳶)이 두견산을 훌쩍 넘는 게 아닌가. 거침없이 하늘로 솟는 연이 여간 기특한 게 아니었다.

서울 연희동에 살았던 여덟 살 소년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외출한 틈에 혼자 방패연을 만들었다. 눈동냥으로 익힌 솜씨였기에 과연 뜰까 궁금했던 소년은 홀로 한강 둔치를 찾았다. 뜨는 정도가 아니었다. 높이 높이 날아올랐다. LG 여의도 쌍둥이 빌딩에 걸려 연줄이 끊어지긴 했지만-.

황해도 소년은 어느덧 101세의 노인이 되었다. 서울의 소년도 자라 26세 청년이 되었다. 전통 연 기능보유자인 노유상(서울시 지정 무형문화재)씨와 손자이자 기능 이수자인 노순씨다.

할아버지와 손자는 설 대목을 맞아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할아버지는 연 제작 및 연 날리기 행사, 그리고 방송 출연으로 분주하다. 설 연휴 때 남산 한옥마을에서 시연회도 연다. 손자도 20일까지 5000여개의 연을 납품해야 한다고 인터뷰 내내 연살을 다듬고 붙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90여년 간 연을 만들고 날려왔다. 연과 얼레를 몸에서 떼어본 적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한국전쟁 때 최전방인 연천에 있었어요. 그때도 내가 연을 날렸던 사람입니다."

그는 한참 늦은 나이에 육사(9기)에 들어가 한국전 때 대대장으로 참전했었다. 1955년 연날리기 대회에서 우승한 것을 계기로 연은 그의 본업이 됐다. 83년에 민족연 보전회를 꾸렸고, 93년엔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손이 빨랐던 때는 하루에 연을 100개도 만들었다"는 그는 "장남이 여섯 살 때 중앙청 앞에서 이승만 대통령과 함께 연을 날린 적이 있었어요. 바람이 강해지자 아이가 날아갈까봐 이 대통령이 뒤에서 끌어안던 게 엊그제 일 같네요"라고 회상했다. 전수자였던 그 장남(고 노성규씨)은 지난해 3월 급작스레 숨졌다. 그 뒤 컴퓨터를 전공한 손자가 가업을 잇겠다고 나섰다. 아버지가 맡았던 민속연 보존회 사무국장 직도 물려받았다.

"생전에 아버지껜 힘들어서 안하겠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장례를 치르면서 결심했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고생하며 해오신 게 제 대에서 사라질 것이 안타까웠어요."

그런 손자를 보는 할아버지의 눈빛은 따뜻했다. "함께 자주 연을 날렸는데도 아들이 손자를 그렇게 잘 가르쳤는지 몰랐어요"라고 대견해 했다.

둘의 바람은 같다. 전통 연의 맥을 이어가는 것이다. 할아버지에겐 한 가지 바람이 더 있다.

"영조가 청계천에서 연날리기 대회를 열었다는 기록이 있더군요. 청계천 복원 공사가 끝나는 대로 거기서 대회가 열렸으면…."

글=고정애 기자<ockham@joongang.co.kr>
사진=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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