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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즐겨읽기] 성의 미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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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성의 미학
미와 교코·진중권 지음
세종서적, 320쪽, 1만5000원

공산주의에 대한 본능적 두드러기와 정치적 경계를 가리키는 레드 콤플렉스에 빗대어 말하면, 한국 사회에는 '핑크 콤플렉스'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성(性) 또는 성욕과 관련된 언행을 지나치게 저어하거나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의도된 정숙이 예의인 양 되어 있다. '남이 하면 외설, 내가 하면 로맨스'식이다.

진중권(42.중앙대 겸임교수) 씨는 미학에서 외설과 예술의 차이를 직접적인 노출과 간접적인 표현의 차이로 푼다. 같은 성을 다뤄도 예술은 사회적 검열을 우회하기 위해 은유나 암시와 같은 예술적 기법을 이용해 성적 표현을 승화한다는 것이다.

포르노그라피가 배를 채우기 위한 패스트 푸드라면, 에로틱 예술은 잘 차려진 정찬이다. 달을 대로 달아오른 두 연인의 사랑을 그대로 그리면 포르노그라피다. 하지만 로코코 시대에 관능 표현의 대가로 꼽혔던 프라고나르(1732~1806)는 불쑥 솟아오른 침대 귀퉁이의 다리와 벌어진 커튼의 검붉은 틈으로 이들의 정염을 상징함으로써 예술화가가 되었다.

진씨가 부인 미와 교코(45.베를린 자유대 서양미술사 전공)와 함께 쓴 이 책은 이처럼 풍부한 도판을 예시하며 서양미술에 나타난 에로티시즘을 분석한다. 르네상스부터 현대까지 서양미술사에서 손꼽히는 에로틱한 도상을 분류하고 각 도상의 역사적 변화를 추적했다. 크게'몸.쾌락.남녀.n개의 성' 네 범주로 나눈 뒤 각기 자잘한 소주제로 들어갔다.'남자가 여자의 가슴을 만질 때' '훔쳐보기' '수간' '벌거벗은 진리''양성구유' 등 구체적이면서도 미학적인 해설이 한 편의 에로틱 소설처럼 다가온다.

특히 다양한 성을 수용하는 현대의 성문화를 풀이하는 'n개의 성'부분은 흥미롭다. 이미 고대로부터 그림에 나타나는 이성애.동성애.양성애의 화면을 들여다보면 다음 대목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남자와 여자를 가르는 뚜렷한 경계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구분은 굳이 필요한 것일까?…사회는 우리에게 남녀 어느 하나의 정체성을 택하라고 강요하나 어쩌면 100% 남성, 혹은 100% 여성은 존재하지 않는 지도 모른다. 어떤 면에서 우리 모두는 양성구유다. 성의 구별을 넘나드는 내면의 운동 속에서 비로소 우리는 창조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 게 아닐까."

진씨는 머리말에서 "삶을 자연으로 되돌리는 죽음의 신 타나토스와 자연에서 삶을 퍼 올리는 생식의 신 에로스, 인간 존재의 처음과 끝을 관장하는 이 두 신(神)은 서로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고 썼다.

그가 이미 간행한 죽음의 미학서인 '춤추는 죽음 1.2'가 시작이었다면, 이제 펴낸 '성의 미학'은 그 마무리인 셈이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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