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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프런트] 자율고 생보자 입학 15명 중 1명꼴 학교 떠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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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의 A군(16)은 올 초 지방 자율형 사립고에 사회적 배려대상자(사배자) 전형으로 입학했다. 수업료와 학교운영지원비, 중식비 등은 정부와 시교육청에서 지원받았다. 하지만 기숙사비가 1학기에만 150만원, 급식비는 70만원이나 됐다.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던 A군은 5월 자퇴했다. 학교 관계자는 “가정형편 때문에 학교 적응이 쉽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첫 신입생을 뽑은 전국 20개 자율형 사립고에 ‘사배자’ 전형으로 입학한 기초생활수급 가정의 학생 15명 중 1명꼴로 과도한 비용 부담을 못 이겨 자퇴하거나 일반 학교로 전학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이 1학기에 부담한 학교 생활 관련 비용은 최고 260만원이나 됐다. 자율고는 수업료와 입학료가 일반고의 세 배가량이다. 사배자 전형은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다문화가정·한부모가정 등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정원의 20%까지 뽑는 제도다.

본지가 13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임해규(한나라당) 의원이 교과부와 시·도교육청에서 제출받은 ‘2010학년도 자율고 사배자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개 자율고의 ‘사배자’ 입학생은 982명이다. 지난달 말까지 33명이 전학·자퇴했다. 기초생활수급자만 보면 255명 중 17명이 해당됐다.

기초수급자와 차상위계층(수급자 바로 위 저소득층) 자녀에게는 입학금과 수업료·급식비 등이 전액 또는 일부 지원된다. 하지만 기숙사비·특강수업비·해외봉사활동비·스쿨버스비 등 지원금을 제외하고 올 1학기에 내야 했던 돈이 평균 137만원에 달했다. 4인 가족 기준으로 기초수급자 가정의 한 달 최저생계비에 해당하는 액수다. 부산 해운대고는 기초수급자가 일반 학생과 똑같이 교내 활동을 하려면 한 학기에 261만원이 필요했다. 서울 한대부고(209만원)와 신일고(190만원) 등 기숙사가 있는 학교의 부담액도 상대적으로 높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저소득층 학생들은 학업을 계속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2학기에도 자퇴·전학자가 많아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지난해 아버지가 실직한 B양(16)은 사배자 학교장 추천 전형을 거쳐 서울의 한 자율고에 다니는데 수업료 등을 일반고 수준(74만원)으로 내는 혜택을 받는다. 하지만 학교운영지원비(17만원)와 급식비(28만원), 수학여행비(17만원) 등을 전액 부담해야 한다. 한 학기에 66만원인 스쿨버스 이용은 포기했다. B양의 대학생 언니는 동생을 위해 휴학했다. 공장 아르바이트로 150만원을 버는 B양의 어머니는 “입학은 시켰지만 뒷받침을 해줄 수 없어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반면 천안 북일고는 교육청·지자체와 함께 저소득층 학생에게 수련비·기숙사비·교과서 비용을, 서울 우신고와 중동고는 경제적 배려대상자의 수학여행비를 대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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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급한 제도 도입=이주호 교과부 장관은 인수위 시절부터 자율고 확대를 포함한 고교 다양화 정책을 주도했다. 그가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던 2008년 ‘정부 임기 내 자율고 100곳 설립’을 목표로 초중등교육법 개정이 추진됐다. 전교조 등이 ‘귀족학교’라며 반발하자 일정 비율(입학 정원의 20%)을 저소득층 등에 배당하는 보완책이 마련됐다. 그러나 사배자 전형은 1년도 안 돼 삐걱거리고 있다. 서울에서는 일부 자율고가 학교장 추천 전형에서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은 학생까지 뽑아 130여 명의 합격 취소 사태가 빚어졌다. 동국대 조상식(교육학) 교수는 “자율고에 대한 비판이 일자 교과부가 면밀한 검토 없이 사배자 전형을 급히 도입한 탓이 크다”고 지적했다.

교과부는 최근 수학여행비 등을 교육청·지자체·학교가 나눠 지원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하지만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일반고 학생을 놔두고 자율고만 지원하기는 어렵다”며 “자율고가 내년에 늘어날 예정이라 예산 배정이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임해규 의원은 “입학 뒤 돈이 많이 들면 저소득층 학생들이 어떻게 견디겠느냐”며 “다양한 장학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교육개발원 김흥주 기획처장은 “미국 사립고에도 사배자 쿼터제가 있지만 학생에게 큰 부담을 지우지는 않는다”며 “재단·지역사회·기업 등의 펀드 지원이 다양하고, 정부가 부담하는 1인당 교육비를 사립학교 비용으로 충당하는 바우처 제도도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박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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