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week& 트랜드] 디지털 체험관에 간 엄마와 아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3면

"엄마, 디카(디지털 카메라) 사줘." "사진 찍을 일이 뭐 그렇게 있다고. 집에 카메라 있잖아."

"다른 애들 다 있는데…. 졸업 선물로- 응?" "얘가 자꾸. 정 그러면 책 사줄게. 고등학교 가면 지금보단 훨씬 많이 읽어야 하잖아."

옥신각신하는 엄마와 아들. 올해 중학교를 졸업하는 권오정(16.분당 양영중)군은 그 또래들처럼 디카나 MP3 혹은 휴대전화 등 전자제품을 졸업 선물로 받고 싶다.

그러나 어머니 강계순(42)씨는 요지부동. 결론은 직접 물건을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그냥 전자 제품을 쭉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듣고 보고 쓸 수 있는 코엑스몰 '디지털 체험관'을 찾아 가기로 한 것.

엄마를 결국엔 매장까지 모시고 오는 데 성공한 아들, 과연 첨단 제품으로 엄마의 마음을 흔들 수 있을지….

정리=최민우 기자<minwoo@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 기능도 중요하지만 디자인이 더 좋아야

오전 10시 코엑스몰. 방학이라 그런지 중고생 아이들로 북적거렸다. 이곳이 전자 제품의 유행을 이끄는 메카라더니 이렇게 생겼구나. 근데 디지털 체험관이라고 해놓고 한곳에 모여 있는 건 아니네. 발품 좀 팔아야겠는걸. 우선 '애플' MP3 매장에 들렀다. 파랑.보라 등 색깔도 알록달록, 크기도 지포 라이터만 한 게 아기자기하다. "청소년들은 기능도 중요하지만 우선 디자인이 예뻐야 하거든요. 친구들한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크니까요." 저런 걸로 애들 마음을 쏙 빼놓는다 이거지.

"엄마, 한번 들어 보실래요?""어머 휴대전화로도 음악을 듣니?" 비록 선물을 사지는 못했지만 공감대를 쌓은 것만으로도 엄마와 아들에겐 특별한 나들이였다.

오정이는 평소 이어폰을 귀에 꽂고 산다. 2년 전에 25만원짜리 MP3를 큰 맘 먹고 사 준 것도 그 때문. 가지고 있으니 별로 관심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엄마, 2년 전에 내가 산 건 30곡만 들어가는데 이건 비슷한 가격에 1000곡이 넘게 들어가." 안 되겠다. 빨리 차단해야지. "디지털 제품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한다니깐. 내년쯤엔 더 좋은 게 나오지 않을까. 그때 사는 게 어때."

애가 눈치를 챘는지 시무룩한 표정으로 헤드폰을 낀다. 액정을 보니 '거미'라고 씌어 있다. "웬 거미니?" "엄만, 가수 이름이야." "이름? 무슨 이름이 그래. 그럼 모기도 있니?"

*** 와, 여드름 자국까지 … 사진관 뺨치네

'HP' 매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노트북과 디카, 그리고 못 보던 게 하나 있다. 직원이 설명한다. "이건 포토 프린터입니다. 디카로 찍은 걸 집에서 바로 뽑을 수 있죠. 요즘은 놀이 공원에서도 사진사들이 폴라로이드가 아니라 이걸 가지고 즉석에서 현상해 준답니다."

세상 참 좋아졌다니깐. "저희 제품의 장점은 호환성이 뛰어나다는 거죠. 다른 브랜드의 디카로 찍은 사진도 모두 뽑을 수 있습니다. 휴대전화로 곧바로 전송할 수도 있고요." 좋다는 얘긴데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간 한번 찍어보기로 했다. 그네같이 생긴 의자에 오정이와 나란히 앉았다. 찰칵! 10여분쯤 기다리니 A4 용지만 한 큰 사진이 내 눈앞에 나왔다. 어쩜, 여드름 자국까지도 나오네. 가격은 27만원대. 하나 사줄까. 그래서 온 가족이 다 함께 사진도 찍고 말이야. 근데 몇 번이나 쓰겠어 이걸. 정 가족 사진이 필요하면 공짜라는데 여기 또 한번 오지 뭐.

*** "이런 걸 어떻게 다루니" "엄마는 몰라도 돼"

점심은 스파게티로 후다닥. 오후엔 '올림푸스' '소니'를 둘러봤다. '아이리버'매장에 가니 이제야 맘에 드는 게 눈에 딱 보인다. 바로 전자사전과 MP3를 합친 제품. 그런데 오정인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너무 커. 그리고 MP3에 곡도 많이 안 들어가고."

마지막으로 삼성관을 찾았다. 휴대전화 하나에 무려 90만원이 넘는 게 있단다. '500만 화소폰'이라는, 휴대전화에 디카와 MP3를 몽땅 합친 것. 값도 값이지만 난 어떻게 작동해야 할지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오정이는 원래 가지고 있던 것처럼 능수능란하게 다룬다. "어떻게 하는 거니?" "엄마는 설명해도 잘 몰라."

그렇긴 하지만…. 서글프다. 문득 학창 시절 아버지가 비디오 작동법을 가르쳐 달라는 걸 '이렇게 간단한 걸 왜 그렇게 모르세요'라며 타박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지금 그 신세다. 그냥 한번 쭉 훑어만 봤는데 벌써 해가 지려고 한다. "엄마, 와 보니깐 좋은 거 많지?" "좋긴,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정신 사나우니 오늘은 그냥 가고 다음에 오면 그땐 한번 생각해보자." 오정아, 거짓말 아냐. 안 사주려는 게 아니고 딴 세상에 온 거 같아 정리가 안 돼. 물론 다음에 와도 비슷하겠지만.

ADVERTISEMENT
ADVERTISEMENT